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노무현 5

변호인 (블루레이)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2013년, http://wolfpack.tistory.com/entry/변호인)은 개봉 당시 노무현을 감추고 애써 '허구'의 영화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가 작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했다는 사실은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을 가명으로 감추고 허구의 영화라는 점을 강조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 영화는 노 전 대통령의 생애 중 1981년 발생한 부림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왜 하필 부림사건일까. 당시 전두환 군사정권이 독서 모임을 용공 이적단체로 몰아 조작한 대표적 공안 사건이었던 부림사건은 노무현의 인생을 극적으로 바꿔 놓았다. 노 전 대통령은 1994년 출간한 수필집 '여보 나 좀 도와줘'에서 부림사건을 "내 삶의 가장..

변호인

대통령 노무현. 언론과 그다지 관계가 좋았던 대통령은 아니었다. 취임하자마자 각 부처별 기자실을 없애버렸고, 구독하던 신문들도 부수를 줄여버렸다. 기자실에 모인 일부 기자들이 작당을 해서 여론을 왜곡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언론은 출발부터 그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고, 집권 기간 내내 불편한 동거가 이어졌다. 정치적으로도 잘한 일도 많았지만 못한 일도 많았다. 2009년 5월29일. 한창 공사중인 광화문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창 앞에 섰다. (http://wolfpack.tistory.com/entry/노무현의-마지막-모습들) 잠시 후, 네 귀를 펼쳐 든 태극기를 앞세운 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과 운구가 천천히 앞을 지나갔다. 여러가지 복잡한 심경에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

영화 2013.12.21

노무현의 마지막 모습들

2009년 5월29일. 노무현. 그가 떠났다. TV에서 운구 행렬이 경복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할 때부터 창 앞에 섰다. 그의 마지막 모습을 가슴에 간직하고 싶었다. 동십자각을 지난 운구가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광화문 앞을 돌고 있었다. 카메라를 꺼냈다. 커다랗게 펼친 태극기의 네 귀를 잡은 차량들이 선두에 서고, 우뚝 선 영정이 뒤를 따랐다. 그 뒤 영구차에 그가 누워 있었다. 운구가 맞은 편 세종문화회관 앞에 왔을 때였다. 셔터를 누르고 나니, 세상이 커다랗게 출렁였다. 그가 바로 앞을 지나는 순간, 그동안 그렇게 참았던 뜨거움이 흘러 내렸다. 그와 함께 꿈꾸었던 세상, 함께 했던 시대가 그렇게 무너지고 있었다. 87년 6월의 거리에서 매캐한 최루탄을 함께 맡고, 민중 가요를 같이 불렀던 그 사내가 떠..

메모장 2009.05.30

노무현에 대한 잊지못할 기억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만료를 앞둔 며칠 전인 지난해 2월. MBC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2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그때 본 잊지못할 기억 하나. 노 대통령이 촬영팀과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청와대 뜰을 걷고 있었다. 그는 방금 걸은 길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래 시멘트 길이었는데 돌을 새로 깔았다." 내일 모레면 청와대를 나갈 사람이 왜 길을 굳이 고쳤을까. "대통령이 처음 들어오면 이거 못고친다. 처음 와서 자기가 있을 곳이기 때문에 돈을 들여서 뭘 하는게 주저된다." 아마도 외부 이목도 있고, 들어와서 기다렸다는 듯 편하게 바꾸는게 주저된다는 뜻일게다. "떠나는 사람이 돈 들어 갈 일 다 해주고 가면 좋다. 대통령 전용기도 주문하려고 했는데, 지난번 국회에서 기각됐다. 비행기는 지..

메모장 2009.05.27

대통령 노무현

대학 시절,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치른 그해 11월에 소위 '5공 청문회'가 열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를 딴 일해재단 설립비리를 밝히기 위한 청문회였다. 당시 TV로 생중계된 청문회에서 민주당 부산동구 초선의원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날카로운 발언으로 청문회장을 호령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그때 그는 광주민주화운동이 폭도들에 맞선 불가피한 자위권 발동이라는 발언을 하고 돌아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살인마"라는 분노에 찬 외침과 함께 명패를 집어던져 수 많은 사람들의 울분을 대신했다. 그때가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서슬퍼런 군사정권의 연장선상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누구도 쉽게 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후 그는 '노무현'이라는 이름 석 자를 널리 알리게 됐다. 돌이켜보면 그..

메모장 2009.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