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다카하타 이사오 4

반딧불의 묘(블루레이)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반딧불의 묘'(1988년)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애니메이션이다. 2차 세계대전말, 일본의 패망으로 고아가 된 남매가 비참하게 살다가 죽어가는 가슴 아픈 이야기로, 흔히 말하는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원작은 나오키상을 수상한 노사카 아키유키의 소설이다. 1930년생인 그는 유년기에 입양돼 어린 시절을 고베에서 보냈는데, 제 2 차 세계대전 당시 고베가 폭격당할 때 다시 전쟁 고아가 되는 비극을 겪었다. 그때 겪은 경험을 소설로 펴냈고, 이를 읽은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역시 제 2 차 세계대전 당시 겪었던 폭격의 경험을 살려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더러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죄과를 덮어둔 채 희생자의 측면만 부각시켰다는 비난을 받지만 사실적인 그림과 이야기..

첼리스트 고슈

평생을 가난하게 산 일본의 시인 겸 작가 미야자와 겐지는 꽤 잘 사는 집에서 태어났다. 전당포 주인이었던 아버지는 벌이가 쏠쏠했다. 그런데 겐지의 생각은 달랐다. 가난한 사람들을 이용해 돈을 벌고 싶지 않았던 그는 농고를 나와 농업학교 교사가 됐다. 일부러 허름한 오두막에 살며 직접 농사를 짓고, 비료를 이용한 새로운 농사법도 연구했다. 또 고단한 농민들을 위해 연주할 목적으로 첼로를 배웠다. 하지만 장마와 냉해로 애써 연구한 농업 기술이 무효가 됐다. 농민들은 기대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자 그에게 등을 돌렸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어렵사리 자비로 펴낸 한 권의 시집과 한 권의 동화집은 딱 다섯 권 팔렸다. 당시 일본 사회는 군부 주도의 군국주의가 한창 팽배하던 시절이라 시집과 동화책이 파고들 틈이 없었다..

추억은 방울방울

다카하타 이사오의 애니메이션은 참으로 서정적이다. '반딧불의 묘'도 그렇고 '추억은 방울방울'(1991년)도 마찬가지다. 도시 여성이 어렸을 때 기억을 떠올리며 농촌을 방문했다가 은은한 사랑에 젖게되는 과정을 그린 '추억은 방울방울'은 마치 1960~70년대 우리네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발달린 흑백TV, 생전처음 먹어보는 바나나와 파인애플에 신기해 하던 기억, 자동연필깎이와 석유곤로, 담장 옆에 붙어있던 커다란 쓰레기통 등 어렸을 때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편집하는 방법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현재로 이어온다. 변함없이 투명한 느낌을 주면서 섬세하게 표현한 그림과 빛을 잘 살린 서양화 분위기의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별다른 사건없이 평온하고 잔잔하게 이어..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平成狸合戰ぽんぽこ, 1994년)은 인간의 자연 파괴를 너구리의 입장에서 다룬 문명비판적 작품이다. 1960년대 일본의 갑작스러운 개발정책으로 숲이 파괴되면서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너구리들이 집단회의 끝에 변신술을 사용해 인간들에게 맞서는 내용이다. 비록 희화화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메시지만큼은 어느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못지않게 무겁고 진지하다. 덕분에 1994년 앙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장편 영화상을 받았지만 같은 지브리 스튜디오 소속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에 비해 내용이 대중적인 편은 아니다. 그렇다 보니 좀 늘어지는 감이 든다. 어찌 보면 그런 점이 미야자키 하야오와 대비되는 다카하타 이사오(高畑勲) 감독의 뚜렷한 특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