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라이언 고슬링 6

블레이드 러너 2049 (4K 블루레이)

리들리 스콧 감독이 30여 년 전에 만든 '블레이드 러너'(1982년)는 충격이었다. 암울한 회색 빛 영상 속에 갇힌 미래의 세계는 마천루 같은 건물 사이로 자동차들이 날아다니는 첨단 물질문명의 세상이었지만 결코 인간의 행복을 담보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사람과 똑같이 생긴 복제인간의 등장으로 혼란이 가중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였다. 그때 스콧 감독이 영화 속에서 다룬 시대적 배경이 2019년, 바로 올해다. 물론 영화처럼 자동차들이 하늘을 날고 사람과 구분이 가지 않는 복제인간이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과학기술의 발달로 일자리고 줄어들거나 여기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밀려나는 인간 소외 현상이 갈수록 커지는 것은 영화와 요즘 세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만..

빅 쇼트 (블루레이)

사람들에게 근래 겪은 국가적 어려움을 꼽으라면 대부분 1997년 IMF 사태를 든다. 처음으로 국가가 외화 부족으로 부도 위기를 맞아 빚을 졌고, 큰 기업이 잇따라 무너졌으며 그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구조조정이라는 것을 겪으며 평생 직장으로 알았던 곳에서 쫓겨 났기 때문이다. 충격이 어찌나 컸던지 국민들은 대대적으로 진행된 금모으기에 아기 돌반지까지 내놓으며 열성적으로 참여해 생각보다 빨리 IMF 체제에서 벗어났다. 그럴 수 있었던 이면에는 국민들의 피땀어린 노력과 더불어 우리가 물건을 팔 수 있었던 세계 시장이 버티고 있었다. 즉 IMF가 국가적 사태이기는 했지만 우리만의 일이었고 해외 각국은 괜찮았기에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만든 물건을 팔 시장이 존재했다. 하지만 2007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촉발..

빅 쇼트

아담 맥케이 감독의 '빅 쇼트'(The Big Short, 2015년)는 독특한 영화다. 금융시스템의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드라마다. '4명의 괴짜 천재들이 월가를 물먹였다'는 식의 홍보문구를 보면 '스팅'이나 '이탈리안잡' '오션스 일레븐' 식의 머리좋은 사기꾼들 얘기를 떠올릴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영화는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전세계적 경제위기의 원인을 다루고 있다. 2008년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의 4위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발생했는데 리먼 사태의 원인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론을 주로 다룬 뉴센트리파이낸셜의 파산이었다.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려 주는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은 3가지가 있는데 신용이 좋은 사람들을 상대로 한 프라임, 중간단계인 ..

영화 2016.02.09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블루레이)

데릭 시앤프랜스 감독의 영화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The Place Beyond the Pines, 2013년)는 서양 영화치고는 특이하게 되풀이되는 인연을 다뤘다. 아버지 대에서 얽힌 악연이 아들 대에서 다시 되풀이 되는 과정은 기독교적 원죄 의식과도 닿아 있지만, 어찌보면 동양적 정서인 윤회를 연상케 한다. 오토바이 스턴트맨이 옛 연인과 아들을 위해 은행을 털면서 벌어지는 과정을 담담하게 다뤘다. 감독이 초점을 맞춘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끈끈한 관계다. 사랑하면서도 다가설 수 없는 관계는 헤어진 연인사이, 부자 지간, 친구 지간에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이를 기나긴 서사와 인상적인 영상으로 담아낸 것은 전적으로 데릭 시앤프랜스 감독의 공이다. 말초적 재미와 뮤직 비디오식 빠른 장면..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대인 관계에 영 서툰 동생이 어느날 여자 친구를 데리고 온단다. 세상에, 살다보니 별일일세. 형 부부는 신나서 저녁을 장만했다. 그런데, 동생의 여자친구는 도통 말이 없고 음식에 손도 대지 않는다. 그럴 수 밖에. 동생의 여자 친구는 인형이었다. 소위 '섹스 돌'로 불리는 실물 크기의 인형을 사랑하는 동생. 이를 착잡한 심경으로 바라보는 형. 그러나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아무도 상대를 미워하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사이에 두고 상대를 이해하려 애쓴다. 그 곡진한 사연이 때로는 웃기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면 가슴이 먹먹하다.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의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Lars and the real girl, 2007년)는 다른 사람과 소통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