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리타 그레이 2

황금광시대

1923년 어느 날, 찰리 채플린은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영화사를 함께 만든 배우 더글라스 페어뱅크스와 메리 픽포드 부부의 집에 놀러 갔다. 그곳에서 그는 사진을 입체로 보여주는 아이들 장난감 같은 장치를 들여다 봤다. 그때 본 사진이 1896년 알래스카와 캐나다 유콘 강 유역의 금광으로 유명한 클론다이크 사진이었다. 금을 찾아 얼어붙은 칠쿠트 고개를 넘는 사람들의 긴 행렬은 골드러시라는 말을 낳았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채플린은 번쩍 영감이 떠올랐다. 당시 '키드'를 능가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그는 그 사진을 보며 책에서 읽은 조지 도너의 일화를 떠올렸다. 1846년 89명의 사람을 이끌고 캘리포니아로 향하던 조지 도너는 미국 네바다주 타호 호수 근처의 눈덮인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조..

키드

위대한 영화인 찰리 채플린이 작가인 구베르너 모리스와 논쟁이 붙은 적이 있다. 당시 채플린은 그의 명작 '더 키드'(The Kid, 1921년)를 눈물과 웃음이 섞인 드라마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자 모리스가 즉각 반기를 들었다. 모리스는 "형식은 순수해야 한다. 희극이면 희극, 드라마면 드라마 하나를 택해야지, 두 개를 섞는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며 "두 개를 섞으면 한 쪽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채플린은 형식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키드'를 "슬랩스틱과 감성이 섞인 드라마"로 만들었다.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작 '키드'는 그렇게 해서 웃으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영화로 태어났다. 김영사에서 번역출간한 '찰리 채플린 나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