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마이클 니먼 6

가타카(4K 블루레이)

앤드류 니콜 감독이 극본을 쓰고 연출한 데뷔작 '가타카'(Gattaca, 1997년)의 매력은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그렸다는 점이다. 그가 이 작품에서 다룬 미래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우성과 열성 유전자에 따라 장래가 결정된다. 열성 인자를 갖고 태어나면 아무리 노력해도 꿈을 이룰 수 없다. 그저 건물 청소나 하고 허드렛일만 하며 연명할 뿐이다. 정작 사회를 이끌어 갈 중요한 일은 우성 인자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의 몫이다. 이런 사회에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 사회에도 편법은 있다. 유전자를 사고팔고 조작해서 열성 인간을 우성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사업이다. 완벽을 꿈꾸는 사회에 이런 비즈니스는 치명적 오점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그 치명적 오점에 희망을 걸고 토성..

피아노 (블루레이)

제인 캠피온 감독은 작품들 속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홀로서기에 대해 일관된 메시지를 견지해 왔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 바로 '피아노'(The Piano, 1993년)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인 에이다(홀로 헌터)는 아주 척박한 환경에 놓인 외로운 여성이다. 그의 현실을 대변해 주듯 사방이 온통 진흙밭 투성이인 뉴질랜드에서 그는 오로지 딸과 피아노에 의지해 살아간다. 하나 뿐인 남편(샘 닐)은 온통 땅을 사서 넓히는데만 관심이 있고, 에이다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엎친데 덥친 격으로 에이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오로지 딸과 수화로만 대화하는 에이다에게 유일하게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통로는 피아노 뿐이다. 그가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연주하는 피아노는 에이다의 말이자 감정이다..

피터 그리너웨이의 동물원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작폼을 좋아하는 이유는 보는 즐거움을 확실히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미술학도였던 그는 각 장면을 하나의 그림 액자처럼 꾸며낸다. 아닌게 아니라, 자신을 가리켜 "영화로 일하는 화가"라고 지칭했을 만큼 그리너웨이 감독은 영상미에 집착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줄거리를 떠나 프레임 하나 하나가 한 폭의 그림같다. 하지만 그가 영상으로 그린 그림은 비단 아름다운 그림만 있는 게 아니다. 미와 추, 삶과 죽음 등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영상을 통해 그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다른 세상의 모습을 비춘다. 피터 그리너웨어 감독이 각본을 쓰고 감독한 '피터 그리너웨이의 동물원'(A Zed & Two Noughts, 1985년)이라는 희한한 제목이 붙은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내용은 백조 때문에 ..

차례로 익사시키기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난해하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일들이 잔뜩 벌어진다. 그러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것은 그만의 독특한 작품관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이야기와 뛰어난 영상, 그리고 감성을 파고드는 음악이 어우러져 묘한 매력을 뿜어낸다. '차례로 익사시키기'(Drowning By Numbers, 1988년)도 마찬가지다. 일단 제목부터 범상찮다. 세 모녀가 연인인 남자들을 차례로 물에 빠뜨려 죽이는 내용이다.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는 여인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거대하고 복잡한 퍼즐이다. 그렇다보니 호불호가 갈릴 수 밖에 없는데, 이 작품을 즐기는 비결이 있다. 바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그대로를 느끼는 방법이다. 실제로 그리너웨이는..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영화들은 지적 유희를 즐길 수 있는 퍼즐 같다. 암시와 메시지, 복선으로 가득 찬 영상은 때로는 난해하기도 하지만 수천 조각의 퍼즐 맞추기를 완성하고 나서 느낄 수 있는 희열을 선사한다. 그 맛에 그리너웨이의 작품을 보게 된다. 그가 1989년에 만든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The Cook The Thief His Wife & Her Lover)도 마찬가지. 범상치 않은 제목의 이 영화는 잔인하며 폭력적인 도둑, 정부와 눈이 맞아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는 도둑의 아내, 그들을 돕는 요리사가 벌이는 아슬아슬한 이야기를 통해 욕망과 모순으로 가득찬 세상을 풍자한다. 전작인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이나 '차례로 익사시키기'처럼 은유로 가득 찬 작품이지만 난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