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박원상 9

내 깡패 같은 애인(블루레이)

1985년 '깜보'라는 영화에서 김혜수와 함께 출연한 박중훈을 본 게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한참 흘렀다. 그동안 찍은 영화가 '영화판'과 '체포왕'까지 포함해서 40여 편이다. 그중 김광식 감독의 '내 깡패 같은 애인'(2010년)은 박중훈의 40번째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들을 끌어 모은 듯한 연기를 보여 준다. 내용은 지방대를 나와 취직이 되지 않아 고생하는 세진(정유미)이 깡패 동철(박중훈)과 이웃이 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뤘다. 박중훈은 이 작품에서 별 볼 일 없이 세월만 흘러간 삼류 건달을 맡았다. 박중훈이 연기한 동철은 잔뜩 허세를 부리지만 의외로 엉성한 구석이 많은 안쓰러운 캐릭터다. 술집에서 시비를 거는 합기도 사범들에게 두드려 맞고 교육방송..

와이키키 브라더스(블루레이)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년)는 보고 나면 가슴이 짠한 영화다.그토록 좋아했던 음악을 위해 노력하는 일행이 현실적인 삶의 장벽에 가로막혀 어려움을 겪는 과정을 다뤘다. 나이가 먹고 나서 다시 보니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이 영화를 처음 본 30대 때에는 비록 힘든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젊은이들의 패기가 보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다시 보니 결코 패기와 용기만으로 넘기 힘든 생활의 어려움이 보인다.아마도 2001년이 IMF 이후이기는 하지만 취업이나 경쟁 상황 등 피부로 느끼는 삶의 여건이 지금보다 덜 각박했던 때문인가 보다. 비록 기술이나 물질은 지금이 그때보다 더 발전했지만 그것이 모두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공평하지 않은 탓일 수도 있다.소위 ..

사도

이준익 감독의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한(恨)과 정(情)이다. 원망과 분노가 응어리진 것이 한이라면 끈끈한 정서적 유대와 따뜻한 인간애가 버무려진 것이 곧 정이다. 우리네 민족 정서이기도 한 한과 정은 그의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 관계 속에 곧잘 표출된다. '왕의 남자'에서 공길 일행이 빚는 갈등과 '님은 먼 곳에'에서 시어머니 구박 속에 버티던 며느리가 남남 같은 남편을 찾아 월남으로 떠난 것도 기실 따져 보면 한과 정 때문이다. '라디오스타'에서 매니저와 한물 간 스타의 관계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번에 내놓은 '사도'(2015년)도 마찬가지다. 비정한 아비가 된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사실을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해 끈끈하게 그려낸..

영화 2015.09.26

부러진 화살 (블루레이)

2007년 최고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 교수가 판사를 향해 석궁을 겨눈 희대의 사건이 발생했다. 언론에서 김명호 교수의 석궁사건으로 보도한 내용이다. 사건의 발단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균관대 수학과의 김명호 교수가 성대의 본고사 채점 도중 수학 문제에서 오류를 발견했다. 하지만 같은 수학과 교수들은 동료 교수가 출제한 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학교의 명예가 실추된다며 오히려 총장에게 김 교수를 징계해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결국 김 교수는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아 부교수 승진에서 탈락하고 재임용마저 실패했다. 이에 김 교수는 복직을 위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대한수학회와 고등과학원 등에 문제 오류 여부를 가려달라고 조회했으나 모두 답변을 거절했다. 오히려 해외..

결혼은 미친 짓이다 (블루레이)

유하 감독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1년)는 계몽적이거나 위선적이지 않아서 좋다. 올바른 사랑이나 인생의 참된 가치관에 대해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저 당시 세태를 솔직하게 보여줄 뿐이다. 이만교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결혼 따로, 연애 따로인 현대 남녀의 솔직한 사랑을 다뤘다. 제목은 역설적으로 결혼이 여러가지 조건을 따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더불어 진실된 사랑보다는 조건이나 형식에 얽매인 결혼제도의 맹점을 꼬집는다. 유하 감독의 이런 비판적 현실관은 나중에 '말죽거리잔혹사'를 통해 학교라는 틀 안에서 벌어지는 위선적 폭력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결혼 제도에 대해 지극히 냉소적인 판타지다. 여주인공이 두 집 살림을 하는 이유도 조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