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송강호 23

밀정(블루레이)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23년 발생한 황옥 경부 사건은 지금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당시 경성을 떠들썩하게 만든 김상옥 의사 의거 직후 무장독립운동단체 의열단은 조선총독부 등 일제 시설을 폭파하는 거사를 준비한다. 의열단은 권총 5자루, 총알 155발, 단재 신채호 선생이 작성한 '조선혁명선언문' 900여 장과 함께 중국 상하이에서 구한 폭탄 36개를 안둥과 신의주를 거쳐 경성으로 향하는 기차에 몰래 숨겨 갖고 들어오다가 사전에 정보가 누설돼 경성역에서 일본 경찰에게 모두 체포된다. 이때 의열단 행동대장 김시현과 함께 체포된 인물 가운데 놀랍게도 조선인으로 일본 경찰의 간부가 된 황옥 경부가 있다. 황옥 경부 미스터리 재판에서 황옥 경부는 "승진을 위해 의열단을 일망타진하려고 위장 협조했다"고 읍소했..

공동경비구역 JSA(블루레이)

1998년 2월, 김훈 중위 사건이 일어났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인 JSA의 벙커에서 경비소대장을 맡고 있던 육사 52기 김훈 중위가 죽은 채 발견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뜻하지 않은 이유로 꽤 관심을 끌었다. 당시 출입처 중 하나였던 현대그룹의 시스템 통합(SI) 업체인 현대정보기술의 김척 사장이 김훈 중위의 아버지였다. 김 사장은 육사 21기로 제1군단장을 지낸 예비역 육군 중장 출신이었다. 당시 SI업체들은 워낙 관급 공사를 많이 맡았던지라 군 출신들이 많이 포진해 있었다. 군에서는 김 중위가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발표했으나 아버지가 타살을 주장하며 강력 반발해 지금까지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은 의문사로 남았다. 아버지가 타살을 주장한 이유는 TV 방송에도 많이 보도됐지만 몇 가지 의혹 때문이었다. 현..

조용한 가족(블루레이)

영화 '조용한 가족'(1998년)은 잔혹코믹극을 표방한 김지운 감독의 데뷔작으로, 그의 작가적 역량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다. 잔혹코믹극이란 무섭고 끔찍한 내용이지만 뜻하지 않은 상황이 가져오는 부분 때문에 역설적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영화를 말한다. 예를 들어 절벽에서 떨어질 뻔한 순간에 아슬아슬하게 나뭇가지를 움켜잡아 한 숨 돌렸는데 우지직 하면서 나뭇가지가 부러지거나, 킬러가 지각을 하는 바람에 엉뚱한 사건이 벌어지는 식이다. 그만큼 김 감독은 상충되는 웃음과 공포의 순간을 병치하는 영리한 구성으로 반전을 꾀하며 기발한 재미를 줬다. 어찌보면 이는 곧 예상하지 못했던 트릭이기도 하지만 기분좋게 웃을 수 있는 장난같은 속임수다. 이런 트릭이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잘 꿰어맞춘 이야기의 연결성 덕분이다. ..

사도

이준익 감독의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한(恨)과 정(情)이다. 원망과 분노가 응어리진 것이 한이라면 끈끈한 정서적 유대와 따뜻한 인간애가 버무려진 것이 곧 정이다. 우리네 민족 정서이기도 한 한과 정은 그의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 관계 속에 곧잘 표출된다. '왕의 남자'에서 공길 일행이 빚는 갈등과 '님은 먼 곳에'에서 시어머니 구박 속에 버티던 며느리가 남남 같은 남편을 찾아 월남으로 떠난 것도 기실 따져 보면 한과 정 때문이다. '라디오스타'에서 매니저와 한물 간 스타의 관계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번에 내놓은 '사도'(2015년)도 마찬가지다. 비정한 아비가 된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사실을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해 끈끈하게 그려낸..

영화 2015.09.26

변호인 (블루레이)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2013년, http://wolfpack.tistory.com/entry/변호인)은 개봉 당시 노무현을 감추고 애써 '허구'의 영화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가 작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했다는 사실은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을 가명으로 감추고 허구의 영화라는 점을 강조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 영화는 노 전 대통령의 생애 중 1981년 발생한 부림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왜 하필 부림사건일까. 당시 전두환 군사정권이 독서 모임을 용공 이적단체로 몰아 조작한 대표적 공안 사건이었던 부림사건은 노무현의 인생을 극적으로 바꿔 놓았다. 노 전 대통령은 1994년 출간한 수필집 '여보 나 좀 도와줘'에서 부림사건을 "내 삶의 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