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숀 펜 6

칼리토(4K)

브라이언 드 팔머(Brian De Palma) 감독이 바라본 세상은 언제나 비정하다. 고생 끝에 잘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한 번쯤 동정을 베풀 법도 한데 그는 그러지 않는다. 특히 그 방법이 잘못된 범죄자에게는 더 할 수 없이 냉정하다. 심지어 개과천선한 범죄자일지라도 용서가 없다. '칼리토'(Carlito's Way, 1993년)는 그런 영화다. 뒷골목 인생들의 고단한 삶을 특유의 비정한 시각으로 바라본 드 팔머식 누아르다. 옥살이를 하고 나온 칼리토(알 파치노 Al Pacino)는 손을 씻고 새 삶을 살지만 친구인 변호사 데이브(숀 펜 Sean Penn)의 일에 얽혀 마피아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때부터 칼리토의 고단한 삶이 시작된다. 영화의 힘은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조절할 줄 아는 드..

인터프리터

시드니 폴락 감독은 참으로 다재다능한 영화인이었다.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17세때 무조건 뉴욕으로 떠나 네이버후드 연극학교에서 연기를 배웠다. 고교 시절 연기자의 꿈을 키운 그는 신문배달부터 화물차 운전 등으로 열심히 일해서 학비를 마련했다. 하지만 배우가 될 기회보다는 학교에 남아 학생들을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는 19세때 모교의 연기교사가 됐다. 그때 그는 감독이 될 수 있는 영화의 기초지식을 쌓았다. 이후 1959년부터 TV배우로 활동했고, 이후 TV물 연출까지 맡았다. 1970년대와 80년대 다수의 영화를 감독한 그의 최고 흥행작은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했던 코미디영화 '투씨'였다.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은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에 빛나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블루레이)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로또에 당첨돼 돈벼락을 맞거나 영웅이 돼서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는 식의 황당하면서도 짜릿한 상상을 한 번쯤 해본다. 물론 실현 가능성이 요원하지만 상상만으로도 즐거우니 꼭 무익한 일은 아니다. 1939년 제임스 서버는 보통 사람들의 흔한 상상을 글로 써 돈을 벌었다. 그가 뉴요커지에 발표한 단편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은 평범한 소시민인 월터 미티가 직장을 가거나 마지못해 따라나선 아내의 쇼핑길에 떠올린 공상들을 다뤘다. 때로는 암살자가 되고 때로는 군인이 돼서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이야기는 그만큼 오락거리로 손색이 없어 MGM에서 1947년 뮤지컬 코미디 형태의 영화로 만들었다. 그로부터 65년이 지나 코미디언 겸 배우 벤 스틸러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만든 리메이크작이 ..

씬 레드 라인 (블루레이)

호주에서 북서쪽에 위치한 솔로몬 군도는 1,000여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졌다. 이 중에서 큰 편에 속하는 섬이 6개 있는데, 과달카날도 그 중 하나다. 과달카날은 길이 140km, 폭 48km 정도의 섬으로, 제주도의 3.5배 크기다. 스페인의 페루 총독이 서쪽으로 가면 황금도시가 있다는 소문을 쫓아 조카인 알바르도 데 멘다나를 보내 발견한 섬인데, 멘다나는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고향 지명을 따서 섬 이름을 명명했다고 한다. 이름도 생소한 이 곳이 제 2 차 세계대전때 태평양 전투의 승패를 가른 분수령이 됐다. 태평양 전역에서 보면 작은 섬이지만 이 섬을 장악하면 호주는 물론이고 솔로몬 해역과 멀리 필리핀 제공권까지 넘볼 수 있게 돼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다. 이를 알아본 일본군은 1942년 7월, 재..

트리 오브 라이프 (블루레이)

테렌스 멜릭 감독의 '트리 오브 라이프'(The Tree of Life, 2011년)는 한 편의 추상화 같은 영화다. 분절되고 단락된 이미지의 나열, 하지만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신을 향해 인간의 구원을 갈구하는 거대 담론으로 묶인 추상화다. 내용은 잭(숀 펜)이 어린 시절을 더듬으며 엄격했던 아버지(브래드 피트)와 빚은 갈등, 어머니(제시카 차스테인)에 대한 그리움, 일찍 세상을 뜬 형제에 대한 기억들이 고통스럽게 소용돌이치는 이야기다. 멜릭 감독은 이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신에게 구원을 바라는 인간 존재에 대한 실존주의적 질문을 던진다. 그만큼 이 작품은 깊은 사색을 통해 해답을 찾으려는 구도자에게는 복음서처럼 다가오겠지만, 이야기의 힘을 믿는 스토리텔러들에게는 갈 곳 잃은 이미지들이 방황하는 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