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스콧 힉스 3

샤인 (블루레이)

호주의 숨은 피아니스였던 데이비드 헬프갓의 연주는 독특하다. 자기만 알아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중얼거리며 연주한다. 얼핏보면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리거나 감탄사를 내뱉는 글렌 굴드 연주를 떠올리게 하는데, 정도가 그보다 훨씬 심하다. 마음에 드는 부분을 여러 번 반복하거나 연주가 끝나면 객석으로 내려가 앞줄에 앉은 관객을 끌어 안는다. 왠지 잘했으니 칭찬해 달라고 칭얼거리는 어린애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피아노 실력 만큼은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뛰어나다. 스콧 힉스 감독의 '샤인'(Shine, 1996년)은 비운의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을 다룬 실화다. 피아노에 천부적 재능을 갖고 있던 헬프갓은 무조건 곁에만 두려는 귄워적인 아버지를 피해 도망치듯 런던왕립음악원으로 유학을 간다. 그곳에서 그는 ..

삼나무에 내리는 눈

스콧 힉스 감독의 '삼나무에 내리는 눈'(Snow Falling On Cedars, 1999년)은 미국의 아픈 역사에 메스를 들이 댄 영화다. 그것도 인디언 학살이나 노예제처럼 먼 옛날이 아닌 그리 얼마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 과거의 상처다. 이 영화는 미국이 미국 시민을 어떻게 다루었는 지 치부를 드러낸 작품이다. 어찌보면 다인종 다민족 국가인 미국의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준 셈이기도 하다. 내용은 1950년대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주검이 발견되면서 마녀 사냥처럼 미국 시민권자인 일본인 젊은이가 살인범으로 몰리게 된 이야기다. 당시 미국은 일본을 상대로 제 2 차 세계대전을 치른 지 얼마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니 사실 여부를 떠나 일본인 피의자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리 없다. 오히려 일본계 젊은이는 적..

사랑의 레시피

요리는 욕망의 모호한 대상이다. 비단 '나인 하프 위크'처럼 음식이 성적 욕망을 상징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영화속에서 요리는 때로 사랑의 매개체로, 때로 질투의 표상으로 둔갑하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지난해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라따뚜이' '식객' '불고기' 등 요리를 소재로 다룬 영화들이 쏟아져나왔다. 오죽했으면 지난해 베를린영화제는 음식 소재 영화부문을 신설하기도 했다. 스코트 힉스 감독의 '사랑의 레시피'(No Reservations, 2007년)도 이런 흐름에 편승한 영화다. 일류 레스토랑 주방장인 케이트(캐서린 제타 존스)가 자신의 삶에 뜻하지 않게 뛰어든 조카 조이(애비게일 브레슬린)와 자신의 주방에 불쑥 뛰어든 부주방장 닉(아론 애크하트)과 함께 하면서 복잡하게 얽힌 인생사를 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