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스티브 부세미 10

위대한 레보스키(4K 블루레이)

코엔 형제가 각본을 쓰고 연출 및 제작한 '위대한 레보스키'(The Big Lebowski, 1998년)는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숨은 걸작이다. 뚜렷한 일거리 없이 볼링이나 치면서 빈둥빈둥 살아가는 레보스키가 어느 날 뜻밖의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행복하고 여유 있는 미국판 '현대 생활 백수'다. 레보스키를 맡은 제프 브리지스의 느물 느물한 연기는 물론이고 유쾌한 내용에 걸맞게 나른하고 편안하게 깔리는 음악들도 일품이다.직업도 없이 하루하루 유유자적하게 아무 계획 없이 살아가는 레보스키는 어찌 보면 바쁜 직장인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일 수 있다. 그만큼 무한 경쟁이 현대 자본주의의 상징이 된 요즘 레보스키는 반동적 캐릭터이기도 하다.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에 그의 ..

저수지의 개들 (블루레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데뷔작인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 1992년)은 타고난 이야기꾼의 숨겨진 재능을 유감없이 드러낸 걸작이다. 엄청난 비디오광이었던 28세의 청년은 자신이 보고 듣고 알고 있던 감각적 소재들을 남김없이 쏟아 부었다. 음악부터 영상, 수다스럽게 쏟아내는 대사와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배우들까지 모든게 완벽한 앙상블을 이뤄낸다. 그만큼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땐 마치 앤디 워홀의 팝 아트 그림처럼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이야기는 한무리의 범죄자들이 모여서 보석상을 털면서 일어나는 소동을 다뤘다. 서로 죽고 죽이는 그들의 파행은 쓰레기장에 모여 쓰레기를 뒤지며 물고 뜯는 개떼를 연상케 한다. 이를 위해 타란티노는 이 작품에서 걸죽한 욕설과 음담패설부터 잔혹한 폭력까지 남..

데스페라도 (블루레이)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데스페라도'(Desperado, 1995년)는 얼마나 잘 노는 지 보려고 멍석을 깔아줬더니 제대로 흥을 보여준 신명나는 놀이마당 같은 느낌이다. 마리아치 3부작 가운데 두 번째인 이 작품은 뜻하지 않은 전작의 성공에 힘입어 콜럼비아사가 작심하고 돈을 대서 만들었다. 덕분에 안토니오 반데라스, 셀마 헤이엑, 스티브 부세미 등 호화 배역진이 총출동해서 로드리게즈 감독의 재능을 한껏 빛내줬다. 재료가 좋으니, 로드리게즈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영상이 빛을 발했다. 줄거리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복수에 나선 기타리스트의 이야기다. 설정만 비슷할 뿐 내용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굳이 전작을 보지 않았어도 상관없다. 요란한 총질도 모자라 로켓탄이 난무하는 가운데 사람들이 종잇장처럼 날아가..

아마겟돈 (블루레이)

세기말이라 그런지 90년대 후반에는 지구 종말을 다룬 재난 영화가 여러 편 등장했다. 그 중 하나가 마이클 베이 감독의 '아마겟돈'(Armageddon, 1998년)이다. 우주를 떠돌던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해 인류가 멸망 위기에 처한다는 내용은 하필 공교롭게 같은 해에 개봉한 '딥 임팩트'와 같았다. 하지만 해결 방식은 달랐다. 극우 마초 기질이 다분한 마이클 베이 답게 그는 무지막지한 핵탄두를 써서 소행성을 날려 버리는 방법을 택했다. 이를 위해 터프함으로 가득한 브루스 윌리스, 벤 애플렉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동원됐다. 소행성이 지구를 위협하는 설정 자체는 무리가 없다. 퉁구스카 고원에 떨어진 운석도 있었고 지구를 스쳐간 행성도 여럿 있었던 만큼 과학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지만, 해결 방법은 현실감..

파고 (블루레이)

코엔 형제의 '파고'(Fargo, 1996년)는 여름에 보면 더 좋은 걸작이다. 끝없이 펼쳐진 설원이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면서, 얽히고 설키는 범죄 사기극이 손에 땀을 쥐게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대뜸 '실화'라는 자막으로 겁을 준다. 하지만 이 또한 사기극이다. 사실은 모두 코엔 형제가 지어낸 이야기이기 때문. 코엔 형제는 "어차피 영화 자체가 허구아니냐"는 대답으로 뻔뻔한 사기극을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과연 코엔 형제답다. 이 작품은 돈을 탐낸 소심한 사내의 어처구니없는 사기극이 피비린내나는 비극으로 막을 내리는 내용이다. 절묘하게 아귀가 맞아 떨어지며 감탄을 자아내는 이야기는 코엔 형제의 탄탄한 시나리오 덕분이다. 여기에 개성파 배우들의 맛깔스런 연기를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언제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