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이키루'(1952년)는 아버지의 모자에 대한 이야기다. 도쿄시청 공무원인 주인공은 평생 써 온 모자처럼 30년 공무원 생활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한 가지 일만 되풀이 해왔다. 무사안일로 타 부서에 일을 떠넘기고 자리 보전에만 급급한 자세로 살았던 그가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위암에 걸렸기 때문이다. 시한부 6개월. 그제사 주인공은 이렇다 한 일 없이 보낸 자신의 30년 인생이 덧없음을 깨닫는다.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낼까. 메피스토펠레스의 꾐에 빠진 파우스트처럼 평소 해보지 못한 유흥에 빠져 보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 그러다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일에서 보람을 찾는다는 말단 여직원의 말에 불현듯 깨닫는다. 그때부터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은 가난한 동네 사람들의 민원을 해결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