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엄지원 9

마스터(블루레이)

2008년 발생한 조희팔 사건은 희대의 사기사건이었다. 그는 비싼 의료기기를 구입해 빌려주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자를 끌어모아 돈을 들고 튀었다. 그가 사기를 쳐서 갖고 사라진 돈이 자그마치 약 5조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만 3만 명이 넘었고 10여 명이 자살하는 등 사회적 여파가 큰 사건이었다. 압권은 2012년 국내에 전해진 그의 사망소식이다. 중국으로 달아난 조희팔이 성형 수술을 하고 숨어 다니다가 2011년 말 돌연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의 유족들은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그를 살해했다며 장례식 영상을 공개했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장례식 영상에 의심을 품은 사람들은 사망 소식조차 조작으로 봤다. 실제로 유골의 유전자(DNA) 감식을 시도했으나 화장을 해버린..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블루레이)

이해영 감독의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2014년)은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과 비슷한 분위기의 스릴러다. 물론 귀신 이야기는 아니지만 폐쇄 공간이나 다름없는 기숙형 여학교, 그 곳에 갇힌 느낌의 병약한 여학생, 소녀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기이한 이야기 등이 외딴 집과 자매를 중심으로 한 장화 홍련과 닮았다. 무엇보다 미술에 공을 들인 미장센느는 스릴러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이 또한 장화 홍련과 닮은 부분으로, 감독이 그만큼 공간 구성에 공을 들였다는 뜻이다. 내용은 1938년 일제 강점기 시절 한 요양학교에서 소녀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으스스한 사건을 다뤘다. 영화의 매력은 여러가지 분위기가 묘하게 어우러진 점이다. 마치 귀신영화를 연상케 하는 어둡고 은밀한 분위기 속에 소녀들이 ..

불량남녀

신근호 감독의 데뷔작 '불량남녀'(2010년)는 빚독촉에 시달리는 경찰관과 채권추심 회사 여직원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다. 하루만 이자가 연체돼도 30분 간격으로 전화를 걸어 사람을 피말리는 빚독촉 광경은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난다. 빚에 쪼들리는 사람 이야기를 꽤나 실감나게 묘사했는데 알고 보니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란다. 과거 카드사 여직원의 빚독촉 전화에 시달리던 감독은 돈 받으러 온 여직원과 만나 술도 마시고 채무 변제에 대한 조언도 들었다고 한다. 제법 우스꽝스럽게 그린 빚 독촉 장면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그 뒤다. 하필 남자 주인공을 형사로 설정해 어설픈 상황을 연출하다보니 후반 러브스토리가 뒤죽박죽 꼬여버렸다. 채권 채무관계였던 두 사람이 졸지에 연인이 되는 과정도 그렇고, 형사가 만사 제쳐놓고 여..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홍상수 감독의 9번째 작품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8년)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영화감독이 자신의 선후배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황당한 사건들을 다뤘다. 여전히 홍 감독 특유의 돌발적인 사건과 뜻밖의 대사들이 황당한 웃음을 자아낸다. 사람들이 일상성이라고 부르는 홍 감독 특유의 전매특허같은 무의미한 인서트 컷들과 무신경한 프레임, 대충 툭툭 끊어놓은 듯한 거친 편집 등도 변함없다. 마치 사람들이 일상에서 고개를 돌렸을 때 망막에 마구잡이로 걸리는 의도하지 않은 영상들이다. 공들여 미장센느를 구축한 작품들과 비교하면 무성의해 보일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가장 자연스러운 영상일 수 있다. 이제는 그런 홍 감독 특유의 일상성이 편하게 다가온다. 남다른 의미부여 없이 편하게 보이는 대로 보면 되기 때문..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래전 홍상수 감독의 어떤 작품 언론시사회를 다녀온 뒤 호된 비판을 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나온 작품들과 궤를 같이 하는 그의 끝없는 자기 복제가 지나쳤다고 봤기 때문이다. 적어도 돈을 받고 상영하는 상업 영화 감독이라면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작품을 다시 본다면 그렇게 비판하지 않을 것 같다. 어느덧 자기 복제는 그의 색깔이 돼버렸다. 이제는 망하든 흥하든, 우디 앨런처럼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는 그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의 9번째 작품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자기 복제는 여전하다. 심지어 김태우, 고현정 등 그의 전작들에서 등장한 배우들도 계속 출연한다. 이 작품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영화감독이 자신의 선후배들을 만나면서 벌어지..

영화 2009.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