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올림픽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0월의 일요일. 서울 북가좌동 주택가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집 담장에서 지켜본 탈주범 지강헌의 최후 모습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담배를 꼬나문 채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던 적의 가득한 눈빛, 창틀을 부여잡고 폭포처럼 쏟아내던 절규, "사랑받고 싶었다" "생명이 몇 시간 남았는 지 모르지만 따사로운 햇빛을 받고 싶다"는 등... 그리고 유리조각으로 목을 긋기 전 세상을 향해 조롱하듯 날린 섬뜩한 미소까지. 무엇보다 귓가에 선연한 것은 비지스의 팝송 '홀리데이'의 애잔한 선율이다. 지강헌은 경찰에 요구해 받은 테이프를 방안 카세트에 꽂고 한껏 볼륨을 올렸다. 그리고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따라 불렀다. 유리 조각으로 자해하고,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