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여현수 2

홀리데이 (LE)

"88올림픽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0월의 일요일. 서울 북가좌동 주택가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집 담장에서 지켜본 탈주범 지강헌의 최후 모습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담배를 꼬나문 채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던 적의 가득한 눈빛, 창틀을 부여잡고 폭포처럼 쏟아내던 절규, "사랑받고 싶었다" "생명이 몇 시간 남았는 지 모르지만 따사로운 햇빛을 받고 싶다"는 등... 그리고 유리조각으로 목을 긋기 전 세상을 향해 조롱하듯 날린 섬뜩한 미소까지. 무엇보다 귓가에 선연한 것은 비지스의 팝송 '홀리데이'의 애잔한 선율이다. 지강헌은 경찰에 요구해 받은 테이프를 방안 카세트에 꽂고 한껏 볼륨을 올렸다. 그리고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따라 불렀다. 유리 조각으로 자해하고, 순간..

번지점프를 하다

질기고 질긴 사랑의 인연을 다룬 김대승 감독의 '번지점프를 하다'(2000년)는 감독 의도와 달리 보고 나면 참으로 찝찝한 영화다. 감독은 운명으로 묶인 사랑의 인연을 얘기하지만 동성애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1983년 운명처럼 만난 인우(이병헌)와 태희(이은주)는 서로 너무 사랑하지만 태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맺어지지 못한다. 이후 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2000년에 고교 교사가 된 인우는 제자인 현빈(여현수)에게서 태희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의 영혼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두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동성애자로 몰아붙여 결국 인우와 현빈은 자유로운 영혼을 갈구하기 위해 뉴질랜드로 떠나 번지점프를 한다. 1980년대를 재현한 공들인 소품과 감독의 섬세한 연출 등이 돋보이지만 지나친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