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오즈 야스지로 9

부초 (블루레이)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부초'(浮草, 1959년)는 떠돌이 유랑극단 사람들을 통해 보편적 삶을 관조하는 영화다. 오즈 감독의 두 번째 컬러 영화이기도 한 이 작품은 1934년에 감독 자신이 만든 흑백 무성영화를 리메이크했다. 공교롭게 소설가 한수산의 '부초'와 제목 및 소재가 같은 이 작품은 제목 또한 동일하게 떠돌이 유랑극단 배우들을 암시한다. 좁은 의미로는 떠돌이 배우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세파에 휘둘리는 인생이라고 볼 수 있다. 내용은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유랑극단이 찾아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유랑극단 단장이 사람도 많지 않은 외딴 마을을 찾아든 이유는 숨겨 놓은 애인이 있기 때문. 심지어 애인과 사이에 아들도 있다. 이를 알게 된 단장의 정부가 질투를 하며 젊은 여배우를 시켜 단장의 숨겨 놓은..

피안화 (블루레이)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피안화'(彼岸花, Equinox Flower, 1958년)는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모르겠다.우리나라에서는 석산이라고 부르는 피안화는 10월에 붉은 꽃이 무리 지어 핀다. 줄기에 해독작용이 있다고 알려져 한의학계에서 석산이라고 부르는데 일본에서는 피안화 또는 장례화, 유령화라는 불길한 이름으로 부른다.이유는 뿌리에 유독한 알칼로이드 물질이 들어 있기 때문. 그마저도 기근 때 사람들이 다 파먹어서 죽음의 상징으로 여겼다.이를 국내에서는 '달맞이꽃'이라는 이름으로 개봉했다. 하지만 영화 내용은 꽃 이름처럼 불길하지 않다.내용은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자와 결혼하려는 딸을 둔 부모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개방적인 유연한 모습을 보이지만 정작 딸에게는 아버지와 상의..

안녕하세요(블루레이)

1970, 80년대 익숙한 풍경 중 하나가 만화가게다. 만화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만화책을 빌려주는 대본소다. 가게에 찾아가 읽기도 하고 한 번에 여러 권을 빌려 집에 와서 배를 깔고 누워 보기도 했다.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던 1970년대에 만화가게는 아이들의 오락실이었다. 1970년대 초반에는 이 만화가게에서 돈을 받고 TV도 보여줬다. 한 번에 10원인가 20원인가 내고 시간 맞춰 가면 TV에서 방영하던 '황금박쥐' '009' 등의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었다. 늘 이 돈을 내고 보기 힘들었던 아이들은 만화가게의 미닫이 문틈으로 몰래 들여다봤다. 그러다 주인에게 들키면 눈 앞에서 문이 쾅 닫히며 한 소리 들어야 했다. 당시로서는 TV가 워낙 비싸서 쉽게 사기 힘들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다. 흑백 TV..

꽁치의 맛(블루레이)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작품들은 편안해서 좋다. 마치 일기장을 들여다보듯 우리네 소소한 일상 속 흔한 얘기들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그러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에서 새삼 거장의 무게를 느낀다. '꽁치의 맛'(秋刀魚の味, 1962년)도 마찬가지. 이 작품은 '만춘' '가을 햇살' 등 그의 전작들에서 되풀이된 홀로 된 부모가 딸을 시집보내고 쓸쓸한 황혼을 맞는 이야기다. 류 치슈, 오카다 마리코, 미카미 신니치로, 나카무라 노부오 등 출연진도 '가을 햇살'과 상당 부분 겹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가을 햇살'이 혼자 남은 나이 든 중년 여성이 과년한 딸 걱정을 다뤘다면 이 작품은 혼자 남은 중년 남성의 외동딸 걱정을 다뤘다. 근저에는 아버지가 됐든, 어머니가 됐든, 딸이 됐든 모두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걱..

가을 햇살 (블루레이)

딸과 함께 사는 홀어미는 어느덧 혼기가 찬 딸의 결혼을 서두른다. 딸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홀어미를 혼자 놔두고 시집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쉽게 말을 못한다. 그 마음을 알기에 지인들은 어머니의 재혼을 준비한다. 하지만 딸은 막상 어머니가 재혼한다니 왠지 서운한 생각이 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복잡 미묘한 심경.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딸과 어머니의 안타까운 마음에 카메라를 댔다. '가을 햇살'(1960년)은 그런 영화다. 얼핏 보면 오즈 야스지로가 1949년에 만든 '만춘'을 닮았다. 아닌게 아니라 '만춘'이 딸을 시집 보내는 아비의 마음이라면, 이 작품은 이를 그대로 뒤집어 어미의 마음을 담았다. 재미있는 점은 '만춘'에서 딸로 나온 하라 세츠코가 이번에는 어머니를 연기한다. 언제나 그렇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