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왕걸 2

열혈남아 (블루레이)

어떤 판본을 먼저 봤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1980년대 후반 대학 시절에 처음 본 왕가위 감독의 걸작 '열혈남아'(1987년, http://wolfpack.tistory.com/entry/열혈남아-골든-콜렉션)는 왕걸과 엽환의 노래 '汝是我胸口永遠的通'(너를 보낸 내 가슴은 아프고)로 기억한다. 유덕화가 장만옥의 팔을 낚아 채 공중전화 박스로 뛰어든 뒤, 하얗게 부서지는 형광등 불빛 아래서 열렬하게 키스를 나눌 때 흘러 나오던 이 노래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왕걸의 CD를 듣다가 이 노래가 흘러 나오면 가슴이 뛰며 아련함이 밀려 온다. 그만큼 왕걸과 엽환의 노래는 왕가위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의 장면들과 기막히게 어울렸다. 따라서 두 사람의 노래가 없는 '열혈남아'는 상상할 수도 없고, 극단..

열혈남아

올림픽이 열리던 해였으니 1988년으로 기억한다. 새 학기가 시작돼 대학에 수강신청을 하러 갔다가 고교 후배를 만났다. 점심을 먹으며 영화 얘기를 하던 중 녀석이 갑자기 "죽이는 영화를 봤다"며 입에 침을 튀기기 시작했다. 녀석 왈, "최근 일본에서 붐이 일어난 작품인데, 국내에서는 지난해 말 변두리 극장에 며칠 걸렸다가 사라졌다"며 "최근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봤는데 극장에서 못 본 게 한이 될 만큼 멋진 작품"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그 작품이 바로 왕가위(王家卫) 감독의 데뷔작 '열혈남아'(As Tears Go By, 1987년)였다. 궁금함을 참지 못해 그날 당장 비디오테이프로 빌려본 작품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당시 더블데크가 없어 VTR을 재생하며 TV에 연결된 비디오카메라로 녹화를 뜬 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