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유영길 3

우묵배미의 사랑(블루레이)

장선우 감독은 '나쁜 영화' '거짓말' '너에게 나를 보낸다' 등 논란이 됐던 영화 때문에 선정적인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 오해받기 쉬운데 사실 그는 사회성 짙은 사실주의 영화를 잘 만들었다.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우묵배미의 사랑'(1990년)이다. 박영한의 연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이 작품은 서울 변두리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봉제기술이 전부인 일도(박중훈)는 봉제공장에서 만난 유부녀 공례(최명길)와 사랑에 빠진다. 일도는 자식까지 낳은 사실혼 관계인 아내(유혜리)가 성정이 거칠어 나긋나긋한 공례에게 정을 붙였고, 공례 역시 폭력적인 남편(이대근)에게 맞고 살아 그렇지 않은 일도에게 의지한다.그렇기에 두 사람은 각각 아내와 남편에게 두드려 맞으면서도 밀회를 이어간다. 영화가 놀라운 ..

8월의 크리스마스 (블루레이)

이르고 늦고의 차이는 있겠지만, 죽음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명제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는 경우도 있지만, 이를 알고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년)는 죽음을 기다리는 한 남자의 평온한 일상을 그렸다. 그의 일상은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옛 추억을 그리워하며 아련한 사랑을 한다. 다만 죽음이 예정돼 있다는 것만 다를 뿐. 그래서 그의 일상은 더없이 소중하고 아름답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마루에 앉아서 발톱을 깎고, 가족과 수박을 먹으며 마당에 씨를 뱉어내고 연인과 아이스크림을 나눠먹는 평범하고 소소한 우리네 일상이 한없는 무게감으로 다가 온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상을 이토록 큰 의미 부여와 함께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기쁜 우리 젊은 날

1987년은 격변의 해였다. 연초부터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더라"는 궤변으로 시작된 서울대생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불거지더니, 급기야 6.10 민주항쟁으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여세를 몰아 찌는 듯이 덥던 여름, 우리 민주화운동의 기념비적 사건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즉 전대협이 결성돼 학생운동의 중심이 됐다. 그 혼란의 와중에 조용한 멜로드라마 한 편이 개봉해 세상사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줬다. 바로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1987년)이었다. 순수하다못해 쑥맥같은 청년이 한 여인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인데, 신파로 빠지지 않고 가벼운 코미디 풍으로 처리해 높은 흥행 성적을 거뒀다. 당시 뜨거운 청춘이었던 만큼,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순수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