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윤진서 5

올드보이(블루레이)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에 빛나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2003년 나온 영화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음악, 연출, 연기, 영상 등 모든 것이 너무나도 훌륭했던 작품이다. 특히 설정이 기가 막혔다. 15년을 갇혀있다가 풀려난 오대수(최민식)의 복수극인 줄 알았으나 실상은 이우진(유지태)이 그린 더 큰 복수극이라는, 상자를 덮는 또 다른 상자 같은 설정부터 막판 충격적인 반전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내러티브를 갖춘 작품이다. 원작은 일본의 츠치야 가론이 그린 만화이지만 주인공이 오랜 시간 갇혀있다가 풀려난 것 외에 나머지는 새로운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르다. 박 감독은 이 작품에 신화적 요소를 많이 가미했다. 금기시된 관계 때문에 빚어지는 비극과 이로 인한 파국은 고대 비극적..

비밀애

형제가 한 여인에게 집착하는 금기시된 사랑은 사람들의 관음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이병헌 이미연이 주연한 '중독', 나탈리 포트만과 토비 맥과이어가 나온 '브라더스' 등 여러 영화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다뤘다. 그런 점에서 류훈 감독의 '비밀애'는 마치 데자부처럼 신선하지 않다. 사고를 당한 형을 대신해 동생이 형수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배우들이 다르다는 점 외에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을 불러 일으킨다. 여기에 반칙까지 했다. 형제가 똑같이 생긴 쌍둥이여서 여인을 헷갈리게 한 점이나 도덕적 비난을 피하기 위한 인위적 결말 등은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특히 그 과정에서 설명이 부족한 장면도 일부 있어 보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결국 눈길을 끄는 건 윤진서와 유지태가 벌이는 육욕 행각 뿐이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민규동 감독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년)을 보면 요즘 한국영화를 참 잘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쌍의 각기 다른 사랑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구성이 '러브 액츄얼리'와 흡사해 감점 요인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우리 현실에 맞는 사랑, 즉 사람들의 애환이 적절히 녹아든 생활 이야기로 '러브 액츄얼리'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특히 형식상 많은 인물과 여러 이야기가 섞이다 보면 혼선을 빚을 법도 한데 연결고리에 신경을 써서 적절한 편집으로 이야기를 잘 정리했다. 영화를 보면 민 감독은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시선이 따뜻한 인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전작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서도 그랬지만 이 작품 역시 소외받고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의 작은 행복을 놓치지 않는다. 현재의 삶이..

친절한 금자씨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2005년)는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에 이어 복수 3부작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다. 유괴범의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 여인(이영애)이 출소 후 원래 범인(최민식)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의 이 작품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흔치 않은 소재와 충격적 영상들로 점철돼 있다. 박 감독의 복수 3부작에 일관되게 흐르는 것은 갈등의 극단적 충돌과 폭발이다. 주인공들은 보통의 경우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복수극을 펼친다. 물론 영화적 재미를 위해 갈등을 극단적으로 증폭시킨 부분도 있지만 박 감독은 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뚜렷하게 부각시킨다. 이 같은 방법은 영상 표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 작품 속 이영애의 모습. 금자의 회상 속에 등장하는 ..

슈퍼스타 감사용

1982년은 변화가 참 많은 해였다. 처음으로 중고생들의 두발 자유화가 허용돼 이전까지 머리를 박박 깎고 다니다가 처음으로 머리를 길게 기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영화 '친구'처럼 훅을 채우는 일본식 교복을 계속 입어야 했다. 그해 1월부터 밤 12시 이후에도 돌아다닐 수 있도록 통행금지가 해제됐다. 그해 여름 강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에서 좋아하는 곡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LP판을 보면 소용돌이의 '보랏빛 안개' '나빠' '님의 눈물' 등이 그해 강변가요제에서 배출된 보석 같은 노래들이었으며 우순실의 '잃어버린 장미' 역시 그해 대학가요제에서 동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해 처음으로 프로야구라는 게 생겼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분위기에 휩싸여 손바닥만 한 '야구 대백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