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이범수 9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1990년)는 전작인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예상외로 크게 성공하자 제작사인 황기성 사단에서 서둘러 만든 속편이다. 전작의 인기를 업고 가기 위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두 번째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았다. 감독은 전작의 각본을 쓴 김성홍이 맡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미연, 김보성이 주연을 맡았고 지금은 유명한 배우들이 된 공형진, 이범수, 최진영 등이 신인으로 출연했다. 음악도 전작처럼 산울림의 김창완이 맡아 주제가를 불렀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전작만큼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서울의 경우 국도극장에서 개봉해 5만3,000명의 관객이 들었다. 전작이 16만 명이 관람해 대박을 쳤으니 그에 비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당시 10만 명 관람이 ..

신의 한수(블루레이)

조범구 감독의 '신의 한수'(2014년)는 내기 바둑꾼들의 목숨을 건 승부와 복수를 다룬 호쾌한 액션극이다. 바둑 하면 가만히 앉아서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는 놀이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영화는 그 같은 통념을 뒤집었다. 내기 바둑을 벌이다가 범죄 조직의 음모에 빠져 형을 잃은 주인공(정우성)이 마치 외인부대 같은 재야 고수들을 모아서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바둑판을 두고 꾼들이 벌이는 치열한 암수 대결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칼과 피가 난무하는 화끈한 액션이 펼쳐진다. 특히 액션 장면이 의외로 섬뜩할 만큼 잔혹하다. 손가락으로 눈동자를 때려서 터뜨리는가 하면 바둑판에 칼을 못 박아 놓고 혀를 자르는 등 끔찍한 장면도 등장한다. 이렇게까지 가혹한 표현이 필요할까 싶지만 어찌보면 요란한 ..

접속 (블루레이)

채팅, 유니텔, 삐삐. 장윤현 감독의 영화 '접속'(1997년)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들이다. 이 영화가 나와서 인기를 끈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 넘었다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이 작품은 당시 인기 있었던 PC통신을 매개로 싹튼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다뤘다. 요즘으로 치면 인터넷으로 만난 묻지마 사랑 같은 이야기인데, 당시로서는 PC통신과 채팅으로 만난 남녀가 사랑을 하는 이야기 자체를 아주 신선하고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인터넷이 널리 퍼지기 전인 만큼 PC통신을 통한 사랑은 거의 사이버 러버 수준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이 영화가 서울의 종로 3가 피카디리 극장에서 개봉을 했는데, 영화 속 두 사람이 만남을 시도하는 장소도 피카디리 극장이어서 신기했다. 영화의 소재였던 PC통신은 당시..

싱글즈 (블루레이)

9자가 들어가는 나이는 왠지 불안하다. 인생의 10년 단위가 저무는 것이지만 1999년처럼 왠지 한 시대가 끝나는 느낌이 든다. 특히 29세라는 나이는 그런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킨다. 더러 20대와 30대의 언저리에서 마치 파릇파릇한 청춘의 20대를 흘려 보내고 아저씨 아줌마가 되는 30대로 접어드는 공포감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오죽했으면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가 다 나왔을까. 일본의 유명 드라마 작가 카마타 토시오는 바로 이 불안한 '29세'를 놓치지 않았다. 29세의 패션업체 여직원은 생일에 남자에게 채이고, 원형 탈모증이 생겼으며, 꿈꿨던 파리컬렉션에도 후배에게 밀려 가지 못한다. 카마타 토시오는 잔뜩 꿈에 부풀지만 제대로 이뤄지는게 없는 불안한 29세의 격정을 드라마 대본으로 만들어 인기를 끌..

짝패

류승완 감독의 액션영화 '짝패'(2006년)를 보면 그가 어지간히 액션물에 한이 맺힌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연출만으로 모자라 직접 주연을 맡아 붕붕 날라다닌다. 어려서부터 액션물을 자양분 삼아 영화의 꿈을 키운 사람답게, 과거 액션물의 전형적인 구조와 스타일들이 녹아 들어가 여기저기 번뜩인다. 그런데 문제는, 그 속에서 류승완 감독은 자기 색깔을 제대로 냈는 가 하는 점이다. 정두홍 무술감독과 콤비를 이뤄 선보인 액션은 요란하고 현란하지만 익히 봐왔던 액션영화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류 감독은 DVD에 실린 음성해설에서 어떤 영화들을 참고했는 지 솔직하게 밝혔다. 그만큼 액션의 기시감은 이 영화의 신선도를 떨어 뜨린다. 더불어 '죽거나 나쁘거나' '다찌마와 리'로 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