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이은주 5

태극기 휘날리며 (SE)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를 보면 '친구' '형사'를 찍은 황기석 촬영감독이 생각난다. '태극기...'를 보고 강남의 사무실로 그를 찾아간 적이 있다. '라이언일병 구하기'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 영화는 멀미가 날 정도로 어지러운 이유를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뉴욕대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온 유학파인 그는 대뜸 실크 스크린 때문이라고 했다. 할리우드 영화들은 보통 부드러운 영상을 얻기 위해 실크 스크린으로 햇빛을 걸러내면서 촬영한다. '라이언일병 구하기'는 물론이고 '게이샤의 추억' 같은 영화는 엄청난 야외 세트를 몽땅 실크 스크린으로 덮었다. 그런데 국내에는 엄청난 크기의 실크 스크린이 없다. 돈 때문이다. 당시 가장 큰 실크 스크린은 황기석 감독이 갖고 있던 40미터짜리였단다. 40미터..

오! 수정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2000년)은 사람의 관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똑같은 일을 겪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한 여자와 두 남자가 벌이는 미묘한 로맨스를 약간 어수선하게 풀었지만 나름대로 색다른 시도가 좋았다. 이 작품을 보면 홍 감독의 연출이 겉보기에 심드렁해 보여도 의외로 사람의 심리를 날카롭게 포착하는 구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등장인물들의 마음속을 엑스레이로 촬영한 듯한 대사와 그림들을 보며 많이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할리우드 영화처럼 드라마틱하지 않아도 관객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다시 나온 DVD 타이틀은 화질이 개선됐다. 흑백 영화라는 특성상 화질이 개선돼도 큰 차이가 나지..

번지점프를 하다

질기고 질긴 사랑의 인연을 다룬 김대승 감독의 '번지점프를 하다'(2000년)는 감독 의도와 달리 보고 나면 참으로 찝찝한 영화다. 감독은 운명으로 묶인 사랑의 인연을 얘기하지만 동성애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1983년 운명처럼 만난 인우(이병헌)와 태희(이은주)는 서로 너무 사랑하지만 태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맺어지지 못한다. 이후 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2000년에 고교 교사가 된 인우는 제자인 현빈(여현수)에게서 태희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의 영혼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두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동성애자로 몰아붙여 결국 인우와 현빈은 자유로운 영혼을 갈구하기 위해 뉴질랜드로 떠나 번지점프를 한다. 1980년대를 재현한 공들인 소품과 감독의 섬세한 연출 등이 돋보이지만 지나친 우..

주홍글씨

욕망은 초콜릿 같다. 핥을수록 달지만 달콤함 뒤에 식욕을 떨어뜨리고 나른한 나락으로 끌어들이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변혁 감독은 '주홍글씨'(2004년)에서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나른한 욕망을 그렸다. 이브가 유혹의 사과를 아담에게 건네는 대목인 성경의 창세기 3장 6절로 시작한 영화는 식욕이나 물욕, 명예욕도 아닌 색욕을 이야기한다. 등장인물도, 이야기의 발단이 되는 사건도 모두 헤어날 수 없는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유혹의 초콜릿을 핥은 인물은 강력계 형사 기훈(한석규). 그는 아내 수현(엄지원)과 애인 가희(이은주)를 오가며 욕망의 달콤함을 한껏 즐긴다. 그런 그에게 과제처럼 주어진 살인 사건은 욕망이 파국으로 치닫는 굴레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런 점에서 살인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경희(성현아..

안녕 유에프오

올해 1월 개봉한 김진민 감독의 데뷔작 '안녕 유에프오'는 맹인 여성과 버스 운전기사의 사랑을 다룬 로맨틱 코미디. 문제는 어설픈 웃음과 곱기만 한 사랑. 코미디와 로맨스 두 가지 모두 제대로 잡지 못했다는 얘기. 이은주는 시각장애인처럼 보이지 않는 연기로 일관했고 이범수, 봉태규 등 개성 있는 배우들은 제대로 능력 발휘를 하지 못했다. 특히 전인권의 특별출연은 빛이 바랬다. DVD는 영화 본편과 부록 등 2장의 디스크로 구성. 본편은 한국영화 치고 무난한 화질. 잡티와 스크래치, 플리커링이 보인다. 돌비 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간간히 서라운드 효과를 발휘. 무엇보다 비 내리는 장면에서 전후방 스피커를 가득 메우는 빗소리 덕분에 공간감이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