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이천희 4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블루레이)

복날 개장수 이야기가 아니다. 김성호 감독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2014년)은 아이들 동화처럼 아기자기하면서도 훈훈한 이야기다. 내용은 집 없이 떠도는 엄마와 아이들이 안주할 집을 구하기 위해 부잣집의 개를 유괴해 갯값을 요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이 과정에서 부잣집 재산을 노린 사람들의 음모가 드러나며 졸지에 개를 유괴한 아이들은 음모를 막는 정의의 사도들이 된다. 우선 이 작품은 원작이 훌륭하다. 제작진이 원작자와 직접 접촉해 최초로 영화화에 성공한 동명의 원작 소설은 미국의 작가 바바라 오코너가 썼다. 바바라 오코너는 아이들이 개를 훔치는 과정을 통해 재미와 유머를 제공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메시지를 함께 담았다. 특히 이 작품에서 웃음을 주는 것은 역할이 바뀐 듯한 아..

남영동 1985

타인의 고통을 무덤덤하게 바라본다는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은 참 불편한 영화다.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985년 민청련 사건으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실제로 겪었던 고문을 토대로 만든 이 영화는 한마디로 고문의 일대기다. 시종일관 약 2시간 동안 처절하게 울리는 비명 속에 한 남자가 고문 당하는 모습을 바라봐야 한다. 영화는 밑도 끝도없이 시작하자마자 고문실로 잡아들인 남자를 족치며 시작한다. 무슨 영화가 줄거리도 없이 무조건 고문으로 때울 수 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네 과거가 실제로 그랬다. 밑도 끝도 없이 멀쩡히 길가던 사람을 잡아다가 무지막지한 고문으로 빨갱이를 만든 역사가 있다. 그러니 영화..

영화 2012.11.24

태풍태양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정재은 감독의 '태풍태양'(2005년)을 보면 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로 데뷔한 정재은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는 전작과 반대로 소년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소요(천정명)가 어그레시브 인라인 스케이팅을 통해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며 꿈을 키우는 내용이다. 성장 영화가 그렇듯 인물을 둘러싼 환경 변화를 통해 내적 고뇌와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렸다. 그러나 주인공 외에 너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다보니 이야기가 분산되는 느낌이다. 따라서 보고 나면 인라인 스케이팅 묘기 외에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런 점에서 정작 본류는 놓치고 소소한 볼거리만 잡은 영화가 돼버렸다. 2.35 대 1 애너모픽..

뚝방전설

조범구 감독의 '뚝방전설'은 뚝방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동네 양아치들 이야기다. 그러나 흔한 깡패 영화로 몰아붙이기에는 색깔이 좀 다르다. 조 감독이 바라본 청춘시절의 폭력은 두려움과 허망함으로 점철돼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기존 깡패영화 주인공처럼 멋진 활약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처참하게 맞고 깨지면서 주인공답지 않게 살려달라며 눈물을 흘린다.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간절하게 삶을 희구하는 모습에서 영웅의 환상이 여지없이 깨진다. 결국 영화는 주먹으로 쌓아올린 전설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이야기 한다. 그처럼 냉소적이고 비판적으로 폭력을 그렸기 때문에 영화는 현실감이 있다. 현실을 바탕으로 청춘 시절을 밀도있게 그린 조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2.35 대 1 애너모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