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장 피에르 멜빌 3

암흑가의 세 사람

"이 세상 사람은 모두 유죄야." "경찰도 말인가요?" "물론이지." 프랑스가 낳은 위대한 느와르 감독 장 피에르 멜빌의 '암흑가의 세 사람'(Le Cercle Rouge, 1970년)에서 경찰서장이 수사관과 나누는 대화다. 믿음과 배신을 다룬 이 영화는 독특하다. 신뢰할 만한 집단인 경찰과 그렇지 못한 범죄자들에 대한 통념을 뒤바꿔 놓는다. 경찰은 범인 체포라는 목적을 위해 함정 수사를 펴고, 정보원을 협박하고 무고한 사람을 납치해 죽음의 위기로 내몬다. 악당들은 그렇지 않다. 엄청난 거금을 앞에 두고도 자기 몫을 양보하며 목숨을 걸고 동료를 구한다. 정의의 전복. 이처럼 사회집단에 대한 정의와 믿음이 통채로 뒤바뀌며 관객의 허를 찌른다. 이를 통해 멜빌은 비정한 사나이들의 세계와 그 속에서 싹트는 의..

그림자 군단

느와르물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은 레지스탕스 출신이다. 그의 이름도 제 2 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로 활동할 때 사용했던 이름이다. '그림자 군단'(L'armee Des Ombres, 1969년)은 그의 경험과 작품관이 어우러진 독특한 느와르물이다. 제 2 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활동한 레지스탕스의 모습을 담고 있지만 여느 전쟁물과는 다르다. 다른 레지스탕스 영화와 달리 영웅적 활약이나 요란한 액션이 없다. 대신 멜빌 특유의 우울과 고독이 홀로 떨어져 은밀하게 활동해야 했던 레지스탕스의 힘든 삶에 고스란히 투영됐다. 한때는 다정한 동료였지만 어느 순간 조직을 위해 동료마저 죽여야 하는 모습에서는 비정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만큼 멜빌은 한치의 흔들림없..

한밤의 암살자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의 '한밤의 암살자'(Le Samourai, 1967년)는 느와르 영화의 교과서로 꼽히는 명작이다.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 같은 소위 홍콩 느와르물과 짐 자무시 감독의 '고스트 독' 등 비장미가 흐르는 현대 느와르물은 모두 멜빌 감독의 '한밤의 암살자'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렇지만 총알이 난무하고 피가 튀는 요란한 액션을 기대하면 안된다. 이 영화는 상당히 모호한 미스터리물이다. 쉽게 말해 액션보다는 알듯 말듯한 스토리 텔링과 회색빛 우울한 영상으로 암흑가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즉, 느와르라는 장르가 얼마나 시적 분위기를 지닌 장르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속에서 액션은 그저 분위기에 일조하는 소품일 뿐이다. 그래서 액션 또한 간결하게 처리된다. 내용은 살인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