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전무송 3

악어

1996년, 우연히 비디오가게에서 독특한 표지에 끌려 집어든 비디오 테이프 '악어'(1996년)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신선하면서도 놀라운 이야기, 특이한 영상과 캐릭터를 보여준 그 작품은 김기덕이라는 감독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우선 김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가 시선을 끈 것은 머구리라는 독특한 소재였다. 머구리란, 잠수부를 뜻하는 옛말이다. 단순히 물 속에 들어가 일하는 잠수부가 아니라 물 밑바닥까지 내려가 난파선 인양이나 시신을 건져내는 궂은 일을 한다. 김 감독이 '악어'에서 그린 머구리는 그 중에서도 시체 인양을 전문으로 한다. 한강다리에서 투신한 사람들의 시신을 뒤져 금품을 가로채거나 유족들에게 돈을 받고 시신을 건져 올린다. 그야말로 험하디 험한 삶을 사는 주인공 앞에 한 여인이 투신하며 야만..

화녀82

'화녀82'(1982년)는 우리 영화사의 기인이자 위대한 명장으로 꼽히는 고 김기영 감독이 자신의 대표작 '하녀'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1971년 '화녀'에 이어 두 번째로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원작보다 한층 더 무시무시해졌다. 이야기의 구성은 똑같다. 가정부로 올라온 시골 처녀가 주인집 남자에게 몸을 버린 후 온 가족에게 복수를 하는 이야기다. 단순 복수가 아니라 남자에 대한 집착이 무서운 증오로 변하는 과정을 애증의 변증법으로 다뤘다. 흑백으로 제작된 원작의 긴장과 섬뜩한 공포도 압권이지만, 다시 만든 이 작품 역시 또다른 긴장감을 선사한다. 특히 이 작품에서 김 감독은 다채로운 색을 사용해 등장인물들의 복잡 미묘한 심리 상태를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했다. 다양하게 반짝이는 스테인드글라스 파편과 김지미..

기쁜 우리 젊은 날

1987년은 격변의 해였다. 연초부터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더라"는 궤변으로 시작된 서울대생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불거지더니, 급기야 6.10 민주항쟁으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여세를 몰아 찌는 듯이 덥던 여름, 우리 민주화운동의 기념비적 사건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즉 전대협이 결성돼 학생운동의 중심이 됐다. 그 혼란의 와중에 조용한 멜로드라마 한 편이 개봉해 세상사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줬다. 바로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1987년)이었다. 순수하다못해 쑥맥같은 청년이 한 여인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인데, 신파로 빠지지 않고 가벼운 코미디 풍으로 처리해 높은 흥행 성적을 거뒀다. 당시 뜨거운 청춘이었던 만큼,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순수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