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조승우 9

와니와 준하: 블루레이

김용균 감독의 '와니와 준하'(2001년)는 동성애, 이복 남매간에 사랑, 혼전 동거 등 지금 봐도 쉽게 다루기 힘든 소재들을 다룬 영화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이니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면 꽤 민감한 이야기들을 감성적으로 건드린 앞서간 영화이자 금기에 도전한 작품이다. 그렇다고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은근슬쩍 묻어두는 스타일이다. 즉 분위기와 정황으로 민감한 이야기를 전할 뿐 보기에 부담스러운 그림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기본 뼈대는 애니메이션 제작사에서 일하는 여주인공 와니(김희선)와 시나리오 작가인 준하(주진모)의 사랑 이야기다. 다만 와니를 비롯해 그의 주변 인물들이 범상치 않다 보니 민감한 이야기들이 에피소드처럼 섞여 들었다. 언뜻 보면 이복 남매간 사랑 이야기는 강신재의 단편 ..

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블루레이)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2015년)은 참으로 섬찟한 영화다. 절대 권력을 잡기 위해 기생하고 공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꽤나 그럴듯 하고 치밀하게 그렸다. 과연 저런 일이 있을까 싶지만 지금까지 발생한 숱한 비리 사건들을 보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물론 각종 권력기관 내부에서 돌아가는 일이나 의사 결정 과정 등은 사실과 좀 거리가 있고 디테일도 떨어지지만 중요한 것은 권력을 향해 응집하는 추총자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인 만큼, 그런 점에서는 성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자본과 권력, 정치권이 얽히고 설키는 거대한 피라미드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만든 것은 원작 웹툰을 그린 윤태호 작가의 공이다. 거대한 그림을 잘 설계했다는 생각이다. 다만 미완으로 끝난 이 작품을 완결된 이야기 ..

암살

국민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에 유명한 어린이 잡지가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부인이었던 고 육영수가 1967년 창간한 '어깨동무'다. 20년 뒤인 1987년 종간됐는데, 당시 '소년중앙'과 더불어 꽤나 유명했던 어린이 잡지였다. 이 잡지에 연재된 만화 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첩보원 36호'다. 1960년대 스포츠 만화로 유명했던 백산(본명 최일부)이 그린 이 만화는 일본 강점기 시절 임시정부의 첩보공작조 활약을 다뤘다. 세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백산이 선 굵은 필체로 그려낸 거친 사나이들의 활약이 어찌나 강렬했던 지 지금도 제목을 잊지 못한다. 이 작품은 원래 이이녕의 대하장편소설이 원작인데 소설보다 만화가 더 기억에 남는다. 2010년에 만화가 재간된 적이 있고 5권의 원작소설도 이후..

영화 2015.07.25

퍼펙트 게임

지금은 고인이 된 롯데 자이언츠의 명투수 최동원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투 아웃 이후 2 스트라이크 3볼 풀 카운트 상황, 사람들은 마운드에 선 최동원만 바라 봤다. 크게 와인드업 한 뒤, 내리 꽂 듯 공을 던지자 마자 최동원은 포수 쪽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덤덤한 표정으로 터덜 터덜 마운드를 걸어 내려 갔다. 볼 것도 없이 스트라이크라는 오만함과 자신감의 표시였다. 아니나 다를까, 심판의 스트라이크 아웃을 외치는 요란한 몸짓이 곧바로 이어진다. 이를 TV로 지켜보며 그의 담대함과 자신감에 절로 경탄했던 기억이 난다. 비단 나만 그렇게 느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롯데 팬으로 보이는 박현욱의 장편 소설 '새는'에도 초반 최동원에 대한 같은 얘기가 나온다. 박희곤 감독의 '퍼펙트 게임'은 프로야구 ..

고고70 (블루레이)

1970년대 유행했던 고고클럽은 젊음의 해방구였다. 12시에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리면 갈 곳 없는 청춘들이 고고클럽에 모여 통행금지가 풀리는 새벽 4시까지 몸을 흔들며 젊음을 발산했다. 최호 감독의 '고고 70'(2008년)은 이제는 빛바랜 사진 같은 1970년대 추억을 화려하게 되살린 작품이다. 단순 지나간 시대상을 조명한 게 아니라 신나는 노래와 춤으로 재구성했다. 모델이 된 것은 1970년대 고고클럽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데블스라는 실존 밴드다. 1968년 결성돼 70년대를 주름잡다가 1980년에 해산한 데블스는 당시로서는 드문 소울 뮤직을 지향하며 요란한 퍼포먼스로 인기를 끌었다. 영화는 70년대 고고클럽의 풍경을 어색하지 않게 잘 구사했다. 특히 실제 악기 연주와 춤을 직접 익혀 공연하듯 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