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지리산 4

태백산맥(블루레이)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황석영의 '장길산',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같은 대하소설은 영화로 만들기 힘든 작품들이다. 두어 시간 남짓한 상영시간에 압축해 소화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방대하기 때문이다. 굳이 만든다면 '반지의 제왕'을 만든 피터 잭슨 감독처럼 여러 번 끊어 만들 수밖에 없을 듯싶다. 삼국지도 영화의 경우 재미있는 부분만 끊어서 만든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으면 박경리의 '토지'처럼 긴 이야기를 소화할 수 있는 드라마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조정래의 10권짜리 대하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1994년)은 용감하면서 무모한 도전이다. 아쉬움 큰 영화 2시간 44분의 남과 북이 이념 대립으로 갈리게 된 민족 비극의 배경을 모두 녹여 넣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남부군(블루레이)

지리산에서 활동한 빨치산을 다룬 소설 중에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대표적인 세 작품이 조정래의 '태백산맥', 이병주의 '지리산', 이태의 '남부군'이다. 이 가운데 태백산맥과 지리산은 각 10권이 넘는 대하소설이어서 영화로 만들기 힘든데, 두레출판사에서 나왔던 남부군은 상, 하 두 권으로 돼 있어서 상대적으로 영화화가 용이하다. 빨치산 출신이 쓴 빨치산 문학의 효시 남부군이 태백산맥이나 지리산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작가의 체험이라는 것이다. 책 표지에도 '어느 빨치산의 수기'라는 부제를 달아 이를 강조했다. 본명이 이우태인 작가 이태는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에게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해방 후 돌아와 기자가 됐다. 서울신문을 거쳐 합동통신에서 기자로 일하던 중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그는 삶의 굴곡을 겪는다. 북..

짝코 (블루레이)

임권택 감독은 가족에 얽힌 아픈 과거사를 갖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 유학 갔던 삼촌이 사회주의자가 되면서 아버지 등이 좌익 활동에 연루돼 곤욕을 치른 것. 특히 아버지가 빨치산이 돼 집을 나간 뒤로 거의 날마다 경찰들이 들이닥쳐 집 뒤짐을 했다고 한다. 견디다 못한 임 감독은 중학교 3학년 때 집을 나와 부산에서 군화를 떼어다 팔면서 살았다. 그때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영화사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임 감독도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그런 만큼 '짝코'(1980년)는 임 감독 입장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다. 이 영화는 망실공비(亡失共匪)를 다룬 작품이다. 망실공비란 말 그대로 사망이나 체포가 확인되지 않아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공비를 말한다. 1950년대 공비 토벌전에서 뛰어난 ..

한국의 체 게바라, 이현상 - '이현상 평전'

고교 시절인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 나라에서 쿠바의 혁명 영웅 체 게바라를 모르는 사람이 꽤 많았다. 오랜 세월 철저한 반공 교육과 숱한 서적들이 금서로 묶인 탓이었다. 괜시리 수업 시간에 체 게바라와 보 구엔 지압을 아는 척 했다가 깜짝 놀라며 호들갑을 떤 선생 덕에 한동안 시달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국내에서도 체 게바라는 티셔츠에 얼굴이 새겨질 정도로 패션 스타가 됐다. 바야흐로 혁명도 상품이 된 것이다. 패션 상품 뿐 아니라 책과 영화 덕분에 체 게바라는 이제 대중적 인물이 됐다. 하지만 의외로 한국판 체 게바라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만석꾼의 아들로 태어나 항일 독립운동으로 청춘을 보낸 뒤 6.25를 거치며 지리산에서 빨치산으로 숨져간 이현상은 체 게바라 못지 않은 혁명가였다. ..

2010.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