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진경 6

목격자(블루레이)

신문방송학과 혹은 언론학부 교재에 오랫동안 언론보도의 영향력으로 소개된 유명한 사례가 있다. 바로 '방관자 효과'로 알려진 '제노비스 신드롬'(Genovese syndrome)이다. 1964년 3월,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면에 살인사건 기사를 보도했다. 한밤중에 집에 가던 28세 여성 키티 제노비스가 윈스턴 모즐리라는 범인에게 살해당한 사건이었다. 911을 낳은 '방관자 효과' 보도 당시 NYT는 여성이 비명을 지르며 칼에 찔리는 35분 동안 주변 건물에서 38명이 목격하고도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고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충격적인 내용의 이 보도는 많은 사람들이 구경꾼처럼 서로 눈치만 보다가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는 방관자 효과라는 말을 낳았고, 급기야 미국 정부에서 긴급전화의 ..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

정기훈 감독의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2015년)는 기자를 꿈꾸던 주인공 도라희(박보영)가 스포츠신문의 수습기자로 입사해 겪는 애환을 그린 코미디다. 이혜린 작가의 원작 소설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를 토대로 만든 영화인데 작심하고 만든 코미디여서 현실성은 떨어진다. 2005년 스포츠신문의 연예부 기자가 된 뒤 경제신문, 온라인 매체 등을 거친 작가가 기자 시절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는데, 영화는 이를 더 과장한 듯싶다. 우선 원작 소설의 주인공 이름인 이라희를 의도적으로 '또라이'를 연상케 하는 도라희로 바꿔 캐릭터를 희화화한 점부터 그렇다. 배경이 되는 영화 속 신문사 또한 저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황당하다. 주인공의 상관인 연예부 부장(정재영)은 시대에 뒤처진 행태를 고..

베테랑 (블루레이)

정의감에 불타는 외골수 형사가 못되먹은 재벌 2세를 혼내주는 내용의 류승완 감독 작품 '베테랑'(2015년)을 보면 대뜸 떠오르는 사건이 하나 있다. 2010년 맷값 폭행으로 유명한 최철원 당시 SK M&M 대표 사건이다. 최태원 SK 회장의 사촌인 최 전 대표는 인수한 업체의 탱크로리 기사가 화물연대 노조 탈퇴를 하지 않고 버티자 사무실로 불러 야구방망이로 구타하고 맷값이라며 2,000만원을 준 뒤 폭행죄로 구속됐다. 이후 최 전 대표는 집행유예로 풀려 났다. 공교롭게 영화 속 회사는 이니셜도 SK와 비슷하고 이동통신 계열사를 갖고 있다. 그렇다 보니 애써 얘기하지 않아도 대번 최 전 대표 사건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비단 최 전 대표 뿐만이 아니다. 영화는 곳곳에 재벌가에 얽힌 '그랬다더라' 식 사..

암살

국민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에 유명한 어린이 잡지가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부인이었던 고 육영수가 1967년 창간한 '어깨동무'다. 20년 뒤인 1987년 종간됐는데, 당시 '소년중앙'과 더불어 꽤나 유명했던 어린이 잡지였다. 이 잡지에 연재된 만화 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첩보원 36호'다. 1960년대 스포츠 만화로 유명했던 백산(본명 최일부)이 그린 이 만화는 일본 강점기 시절 임시정부의 첩보공작조 활약을 다뤘다. 세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백산이 선 굵은 필체로 그려낸 거친 사나이들의 활약이 어찌나 강렬했던 지 지금도 제목을 잊지 못한다. 이 작품은 원래 이이녕의 대하장편소설이 원작인데 소설보다 만화가 더 기억에 남는다. 2010년에 만화가 재간된 적이 있고 5권의 원작소설도 이후..

영화 2015.07.25

부러진 화살 (블루레이)

2007년 최고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 교수가 판사를 향해 석궁을 겨눈 희대의 사건이 발생했다. 언론에서 김명호 교수의 석궁사건으로 보도한 내용이다. 사건의 발단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균관대 수학과의 김명호 교수가 성대의 본고사 채점 도중 수학 문제에서 오류를 발견했다. 하지만 같은 수학과 교수들은 동료 교수가 출제한 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학교의 명예가 실추된다며 오히려 총장에게 김 교수를 징계해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결국 김 교수는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아 부교수 승진에서 탈락하고 재임용마저 실패했다. 이에 김 교수는 복직을 위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대한수학회와 고등과학원 등에 문제 오류 여부를 가려달라고 조회했으나 모두 답변을 거절했다. 오히려 해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