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천호진 10

베테랑 (블루레이)

정의감에 불타는 외골수 형사가 못되먹은 재벌 2세를 혼내주는 내용의 류승완 감독 작품 '베테랑'(2015년)을 보면 대뜸 떠오르는 사건이 하나 있다. 2010년 맷값 폭행으로 유명한 최철원 당시 SK M&M 대표 사건이다. 최태원 SK 회장의 사촌인 최 전 대표는 인수한 업체의 탱크로리 기사가 화물연대 노조 탈퇴를 하지 않고 버티자 사무실로 불러 야구방망이로 구타하고 맷값이라며 2,000만원을 준 뒤 폭행죄로 구속됐다. 이후 최 전 대표는 집행유예로 풀려 났다. 공교롭게 영화 속 회사는 이니셜도 SK와 비슷하고 이동통신 계열사를 갖고 있다. 그렇다 보니 애써 얘기하지 않아도 대번 최 전 대표 사건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비단 최 전 대표 뿐만이 아니다. 영화는 곳곳에 재벌가에 얽힌 '그랬다더라' 식 사..

범죄의 재구성 (블루레이)

악인들의 세계를 즐겨 다루는 최동훈 감독의 '범죄의 재구성'(2004년)은 범죄 3부작의 시작이다. 사기꾼이 나오는 이 작품으로 출발해 도박꾼이 나오는 '타짜', 도둑이 나오는 '도둑들'로 이어진다. 이 작품들을 보면 일종의 패턴이 있다. 여러 명의 스타가 우루루 나와 저마다 가진 개성과 특기로 팀웍을 이뤄 한 탕 사건을 벌이는 것. '이탈리안 잡'이나 '오션스 일레븐' 같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스타일이다. 여기에 마치 김수현 드라마를 보듯 캐릭터들은 어찌 그리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대사를 쉼없이 내뱉는 지 할리우드 시트콤을 보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그의 영화는 지극히 이국적이다. 그 색다름이 그의 영화가 주는 재미이자 생경함이다. 즉, 재미있으면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낯설음이 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

이웃사람

배우나 감독보다 원작자의 영향이 더 큰 사람이 만화가 강풀이다. 그의 작품이 워낙 웹툰으로 유명하기 때문. 김휘 감독의 '이웃사람'도 마찬가지. 웹툰으로 널리 알려진 이 작품은 어느 마을의 여중생이 살해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묻지마 살인과 연쇄살인의 코드가 적절히 섞이면서 여기에 이웃들의 무관심이라는 메시지가 덤으로 얹혔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큼 흥미진진한 소재가 듬뿍 얹힌 이야기는 궁금증을 유발하며 눈길을 붙잡는다. 기본적인 줄거리 외에 인물들도 개개의 사연을 지닌채 살아 있다. 왜 누구는 이웃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누구는 애써 외면하는 지 스토리를 통해 사연들이 풀려 나오면서 영화는 때로는 공포물, 때로는 스릴러의 장르를 오간다. 배우들도 연기도 좋았다. 악..

영화 2012.08.26

악마를 보았다 (블루레이)

[아래 캡처 화면에는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여서 잔혹 영상이 일부 들어 있으니 청소년들은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블로그 운영자가 자체 성인 인증 기능을 글에 붙일 수 없게 돼 있어 이런 글을 대신 띄웁니다.] 논란이 많았던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2010년)는 제목처럼 인간 악행의 끝을 보여준다. 뼈속부터 타고난 악마처럼 죄의식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범 장경철(최민식)은 비정상적인 사이코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잔인무도한 짓을 벌인다. 여자들을 납치해 폭행하고 토막살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친구들은 인육을 먹기까지 한다. 세상에, 악마적 상상력이 너무 끔찍한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터져 나올만 하지만 어쩌랴, 지존파 막가파 사건 등을 보면 현실은 영화보다 더 참담하다. 결국 감독과 작가의 상상..

악마를 보았다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는 참으로 불편한 영화다. 살인마에게 애인을 잃은 사내가 복수에 나섰으니 얼마나 잔혹하겠는가. 때리고 찌르는 것은 보통이고 뼈를 부수고 살을 찢어 발긴다. 그 바람에 스크린은 시종일관 사내의 증오심이 뿜어내는 핏빛 복수로 새빨갛게 물든다. 그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서로 악마를 본다. 죽이려 달려드는 상대에게서, 그리고 상대를 파괴하려 드는 자신의 내부에서 그들은 각자 악마를 본다. 관객은 그렇게 변해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 인간 본성의 파괴라는 또다른 악마를 본다. 스크린 속에서, 스크린 밖에서 서로 악마를 보는 셈이다. 악마들의 향연은 절로 얼굴이 찌푸려질 만큼 끔찍하다. 인육을 먹고, 더러 개에게도 먹이는 장면은 재심의를 받기 위해 편집에서 걸러냈지만 정황상 추정이 가능..

영화 2010.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