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크리스토퍼 놀란 9

인셉션 (4K 블루레이)

개인적인 자의식의 세계를 여럿이 공감하도록 객관화 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Inception, 2010년)이 공감대를 얻는데 실패한 이유다.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 무의식의 세계인 꿈 속에 들어가 생각을 훔친다는 설정은 기발하고 참신하지만, 이를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풀어내는데는 실패했다. 설명하기 쉽지 않은 의식의 세계를 정교하게 그리지 못했기 때문. 그렇다보니 이해하기 힘들고 복잡하다는 지적과 다의적인 해석이 나오는 불친절한 영화가 돼버렸다. 프리즘에 부딪쳐 산산히 갈라지는 빛의 색깔을 하나로 표현할 수 없듯, 제각기 눈에 보이는 대로 갑론을박하는 관객의 이견을 탓할 수 없다. 그렇게 만든 놀란 감독에게 문제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메멘토' '프레스티지' '배트..

배트맨 비긴즈(4K 블루레이)

5번째 배트맨 시리즈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즈'(Batman Begins, 2005년)는 요즘 영화의 트렌드가 되다시피 한 프리퀄이다. 주인공 브루스 웨인(크리스천 베일)이 부모가 살해당한 뒤 힘든 시절을 보내고 배트맨이 되기 전 7년 동안 세상을 떠도는 과정과 배트맨 마스크를 처음 쓴 1년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연히 영화의 분위기는 무겁다. 놀란 감독은 끝없는 고뇌 끝에 영웅이 태어나는 과정을 공포물처럼 처리해 액션에 치중한 기존 시리즈와 차별화했다. 어지러운 액션과 탱크 같은 배트카 못지않게 볼 만한 것은 화려한 조연들. 리암 니슨, 모건 프리먼, 마이클 케인, 와타나베 켄, 게리 올드만, 룻거 하우어 등 오히려 주연보다 유명한 조연들이 탄탄한 연기력으로 영화를 빈틈없이 꽉 ..

다크나이트 라이즈(4K 블루레이)

'다크나이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다크나이트 라이즈'(The Dark Knight Rises, 2012년)의 배트맨은 유독 지치고 힘들어 보인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시작해 '다크나이트'를 거쳐 3부작의 마지막인 이번 작품까지 달려 오면서 배트맨은 피로가 쌓이고 몸도 다쳤다. 그런데도 제대로 듣지 않는 관절을 동여매고 달려온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그 이유를 배트맨이 폭력과 슈트에 중독됐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그 얘기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놀란 감독은 다크나이트 3부작을 만들면서 자신의 연출 스타일에 중독돼 그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강박관념에 가까울 정도로 압도적인 스케일을 추구하는 영상과 악은 악대로, 정의는 정의대로 정당성을 주장하며 길게 늘어놓는 사설이 여전..

다크나이트 (4K 블루레이)

때로는 정의가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악인조차도 마음대로 해치지 못하고,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할 때도 망설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다크나이트'(The Dark Knight, 2008년)는 정의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서 출발한다. 한없이 못된 악당 조커는 절대 누구를 죽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 배트맨을 끊임없는 딜레마에 빠트려 결국 영웅 행위에 대해 회의하는 지경까지 몰아붙인다. 과연 정의가 모두를 이롭게 하는가. 배트맨은 영웅이 범죄자로 둔갑할 수도 있는 세상에서 어둠의 기사가 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철학적 물음을 화려한 액션과 결합해 이 작품을 여타의 수퍼 히어로물과는 다른 의식있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매트릭스'처럼 잘 포장된 액션 속에는..

프레스티지(4K 블루레이)

어린 시절에 마술은 동심을 사로잡는 매혹적이고 신비한 볼거리였다. 그러나 차차 나이가 들면서 마술이 눈속임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신비감은 사라졌다. 그만큼 마술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 영악한 현대인들을 유인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그 놀라운 작업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해냈다. 그가 만든 영화 '프레스티지'(The Prestige, 2006년)는 마술이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19세기, 온갖 기교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두 마술사의 대결을 다룬 작품이다. 무엇보다 1995년에 출간한 크리스토퍼 프리스트의 훌륭한 원작 소설 덕분에 이야기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보는 이를 끌어들인다. 때로는 마술같고 때로는 추리소설처럼 기묘한 이야기는 마술이라는 신비스런 소재에 과학과 사람들의 광기를 적당히 섞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