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타이베이 3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블루레이)

대만의 구파도(九把刀) 감독이 만든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那些年, 我們一起追的女孩, 2011년)는 고교 시절 첫사랑에 대한 감독의 고백 같은 영화다. 실제로 구파도 감독은 고교 시절 좋아했던 소녀를 잊지 못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 실제 좋아했던 소녀의 이름이 실명 그대로 영화 속 여주인공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는 2005년 고교 시절 사랑했던 연인의 결혼식에 다녀온 뒤 옛 기억을 더듬어 2006년 아픈 사랑 이야기를 소설로 펴냈다. 이후 영화 제작을 꾀했으나 마땅한 제작사와 감독을 찾지 못해 2010년 직접 만들었다. 그는 연출뿐만 아니라 대본도 쓰고 제작까지 맡았다. 한 번도 영화를 만든 적이 없는 풋내기에게 어떤 제작사도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용감한 제작자와 감독이 사비를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블루레이)

2.28 사건으로 기억되는 대만의 1947년은 암울했다.1947년 2월 28일에 발생한 이 사건은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국민당 소속 관료가 정부 독점 판매품인 담배를 타이베이시에서 몰래 팔던 대만섬 출신의 노파를 마구 때려죽이면서 벌어졌다. 당시 대만에서는 외성인이라고 부르던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장개석의 국민당 사람들과 내성인으로 통하던 대만 본토박이들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고 있었다.장개석은 중국 본토에서 모택동이 이끌던 공산당에게 연일 패배해 쫓겨날 처지여서 피난처로 대만을 생각하고 국민당군을 보내 정지작업을 벌였다. 결국 1947년에 장개석의 국민당은 중국 본토를 잃고 대만으로 허겁지겁 피신했다.그러니 당연히 외성인과 내성인 사이에 갈등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 갈등이 폭발한 것이 2.28 사건이었..

대만 타이베이

국민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만 해도 중국이라하면 중화민국, 즉 지금의 대만(타이완)을 의미했다. 지금의 중국은 당시 '중공'이었다. 그러던 것이 노태우 정부 시절인 92년에 중국과 국교를 수교하면서 중국의 요구로 대만과 국교가 단절됐다. 지금까지 국가적 교류는 없지만 경제, 민간 차원의 교류는 활발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중국의 압력 때문에 대만과 국교를 유지하는 나라는 10여개국 수준에 불과하지만 정작 중국과 대만은 요즘 훈풍 분위기다. 양 국간 경제협력으로 대만의 중국투자 및 중국의 대만투자가 늘고 있다. 대만까지 인천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남짓 걸린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니어서 시차도 1시간 밖에 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만의 수도인 타이베이는 정확히 말하면 수도가 아닌 직할시다. 194..

여행 2010.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