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남영동 1985

울프팩 2012. 11. 24. 21:36

타인의 고통을 무덤덤하게 바라본다는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은 참 불편한 영화다.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985년 민청련 사건으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실제로 겪었던 고문을 토대로 만든 이 영화는 한마디로 고문의 일대기다.
시종일관 약 2시간 동안 처절하게 울리는 비명 속에 한 남자가 고문 당하는 모습을 바라봐야 한다.

영화는 밑도 끝도없이 시작하자마자 고문실로 잡아들인 남자를 족치며 시작한다.
무슨 영화가 줄거리도 없이 무조건 고문으로 때울 수 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네 과거가 실제로 그랬다.
밑도 끝도 없이 멀쩡히 길가던 사람을 잡아다가 무지막지한 고문으로 빨갱이를 만든 역사가 있다.

그러니 영화가 느닷없는 고문으로 시작하는 것을 탓할 수도 없다.
오히려 느닷없는 황망함이 사실감과 충격을 강조한다.

배우들이 고문 장면을 어찌나 실감나게 연기했는 지 절로 눈쌀이 찌푸려지고, 답답함에 한숨이 나온다.
얼굴을 덮은 수건 위로 고춧가루 물을 붓고, 살 타는 냄새가 나도록 전기 고문을 가하는 장면은 두 눈 뜨고 보기 힘들다.

특히 당시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던 이근안 경감이 고안했다는 칠성판은 이름만으로도 무시무시하다.
영화는 그만큼 리얼리티에 충실하다.

각종 고문방법, 고문도구 등을 마치 TV의 다큐멘터리 고발프로처럼 세세하게 보여준다.
오히려 영화의 종료가 반가울 만큼 간접적인 고통이 큰 작품이다.

언제나 존재 자체로 무게감을 주는 문성근, 명계남 등 관록있는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
특히 고문 기술자를 연기한 이경영, 새삼 그의 변신이 놀랍다.

확실히 주어진 역할 만큼은 제대로 소화해 내는 이름값을 하는 배우다.
우리 시대,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가슴 아프지만 절대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영화의 메시지를 새겨 볼 만한 작품이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이 실제로 등장해 한마디씩 토해내는 이야기들이 가슴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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