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핵심이었던 로저 워터스는 2002년 서울 잠실의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공연을 가졌다.
맨 앞줄에서 본 그의 공연은 환상적이었다.
음반으로만 듣고 비디오테이프나 DVD로만 본 그가 온갖 영상과 악기를 동원해 쏟아내는 소리의 마술에 취해 3시간을 정신없이 보낸 기억이 있다.
관객들도 대부분 그의 골수팬인지라 연신 "로저"를 연호하며 열광했다.
로저 워터스는 핑크 플로이드 시절에도 그랬지만 솔로로 나오고 나서도 공연에 아주 많은 공을 들이기로 유명하다.
공연을 위해 영상을 따로 찍고 거대한 세트를 만들어 한 편의 록 드라마처럼 연출한다.
특히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연출한 '더 월' 라이브는 압권이었다.
유명한 가수들이 객원 싱어로 등장해 오페라처럼 연출한 이 작품은 DVD로도 제작됐다.
알란 파커가 영화로도 만들어서 유명한데 공연은 현장의 뜨거운 열기와 더불어 영화와 또다른 분위기를 선사한다.
그래서 핑크 플로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의 공연을 반드시 보고싶어 한다.
로저 워터스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진행한 '로저 워터스 더 월'(Roger Waters The Wall, 2014년) 투어도 예외가 아니다.
그가 숀 에반스와 공동 연출한 이 작품은 아예 처음부터 공연을 촬영해 극장에서 상영할 목적으로 기획됐다.
그래서 2014년 9월 전세계 극장에서 단 한 번만 상영됐고 국내에서는 이보다 늦은 11월에 메가박스에서 상영회를 가졌다.
따라서 국내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그때 기회를 놓친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주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압도적인 무대 연출이 눈길을 끈다.
로저 워터스는 무려 수십 개의 패널을 이어 붙인 길이 73미터의 벽을 무대 위에 쌓아 놓고 여기에 알란 파커의 '더 월' 장면이나 별도 촬영한 영상을 쏘며 핑크 플로이드의 11번째 음반인 '더 월'의 노래들을 불렀다.
여기에 영상은 공연 중간 중간 로저 워터스가 전몰 용사들의 무덤을 돌아보는 과정을 끼워 넣어 반전 메시지를 강조했다.
극장 상영을 목표로 한 만큼 모든 과정을 10여대의 4K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했다.
그만큼 1080p 풀HD의 2.40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최상의 화질을 보여준다.
돌비애트모스를 지원하는 음향 또한 탁월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리어 활용도가 아주 높아서 공연장에 와 있는 듯한 현장감을 제공한다.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된 만큼 부록도 다채롭다.
공연 준비 과정을 빠르게 편집한 영상과 본편에 수록하지 않은 투어 장면들, 투어 중간에 일어난 일들을 편집한 영상들이 모두 HD 영상으로 수록됐다.
그 중에 핑크 플로이드의 보컬이었던 데이빗 길모어와 드러머였던 닉 메이슨이 게스트로 참여해 'Comfortably Numb'를 부르는 영상도 들어 있다.
비록 머리가 벗겨져 왕년의 잘 생겼던 모습이 퇴색되긴 했지만 길모어를 다시 볼 수 있어 반가운 영상이다.
아쉬운 것은 특별 한정판 케이스다.
재킷 구조가 개인적으로 디스크에 손상을 줄 수 있어 가장 싫어하는 슬리브형태다.
양질의 사진책자가 들어 있는 점은 좋지만 보관할 때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두툼한 케이스와 아웃 슬리브, 디스크를 다루기 힘든 재킷 구조는 마이너스 요소다.
그래도 로저 워터스의 더 월을 최상의 화질로 즐길 수 있는 타이틀이라는 점에서 소장 가치가 높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영상은 전몰 용사 묘지를 돌아보는 영상으로 시작돼 중간에 공연이 펼쳐지며 로드무비처럼 진행된다. 로저 워터스는 2013년 불가리아의 리타코보 마을을 방문해 프랭크 톰슨의 묘소를 찾았다. 제 2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 소령이었던 톰슨은 나치 독일이 점령한 불가리아에서 항전을 펼치다가 체포돼 24세 나이로 처형됐다.
이 투어는 2010년부터 13년까지 219회 열렸으며 410만명 이상이 관람했다.
로저 워터스는 이 투어를 통해 총 4억5,000만달러를 벌어 솔로 가수로는 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
더 월 공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높이 9미터의 거대한 인형. 이를 움직이도록 무대 뒤에서 기계 장치로 조작한다.
위대한 록커 로저 워터스. 그는 오히려 나이 들고 더 멋있어졌다. 마치 리차드 기어를 연상케 한다.
영상은 고화질 프로젝터 22개를 설치해 무대 위 마련한 벽에 투사했다.
'더 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망치당 휘장. 마치 나치 독일의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연상케 한다.
핑크 플로이드는 1979년 걸작 음반 '더 월'을 내놓았다. 이 시기 밴드는 로저 워터스의 고집 때문에 멤버들간에 갈등이 발생해 깨질 위기였다.
그럼에도 로저 워터스가 주도하다시피한 '더 월' 앨범은 크게 성공했다. 알란 파커 감독은 1982년에 가수 밥 겔도프를 주연으로 기용해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도 음반 못지 않은 수작이다.
공연이 진행되며 차곡 차곡 쌓인 벽은 공연 말미에 일제히 무너져 내리며 모든 압제로부터 해방을 상징한다.
Roger Waters 'The Wall' 공연 중 'Comfortably Nu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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