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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피렌체의 단테와 미켈란젤로

울프팩 2017. 11. 25. 17:39

피렌체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몇 있다.

단테, 마키아벨리, 미켈란젤로, 메디치 등이 대표적인 인물인데 그중에서 예술사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단테와 미켈란젤로다.


단테는 피렌체와 애증의 관계다.

문학가 겸 정치가, 철학자, 법률가, 과학자 등 다재다능했던 단테는 피렌체의 귀족 가문 출신이다.


볼로냐 대학에서 수사학, 철학, 천문학 등을 공부했던 그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서사시 '신곡'을 써서 유명한 인물이다.

단테는 젊은 시절 100인 위원회 멤버, 통령의 한 사람으로 선출돼 피렌체 통치에도 관여했다.

[단테의 생가로 알려진 단테 박물관. 유료다.]


당시 이탈리아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지지하는 기벨린당과 교황을 따르는 겔프당으로 갈려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그런데 겔프당은 기벨린당과 싸움에서 이긴 뒤 신흥 상인계급을 중심으로 교황에게서 독립하기를 원한 백당과 교황과 귀족의 화해를 주장한 흑당으로 갈라졌다.


백당에 가담한 단테는 프랑스군의 지원을 받은 흑당의 쿠데타로 하루아침에 권력을 잃고 말았다.

마침 단테는 교황청에 외교 사절로 파견돼 변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흑당에게 반역죄로 기소돼 2년의 유배형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피렌체 정부를 장악한 백당은 단테가 반발하자 피렌체로 돌아올 경우 화형에 처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때부터 단테는 21년간 고향에 가지 못하고 라벤나 등지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이때 단테는 신곡을 완성했다.

결국 단테는 라벤나의 외교사절로 베니스를 다녀오다가 사망했다.

[단테 박물관 입구.]


피렌체는 단테가 죽은 뒤 그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고향에 한이 맺혔던 단테는 이를 거부하는 유언을 남겨 라벤나에 묻혔다.


피렌체는 속죄의 뜻으로 판테온이나 마찬가지인 산타 크로체 성당에 단테의 무덤을 만들었으나 빈 무덤이다.

치열하면서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단테는 대단한 낭만주의자이기도 하다.


9세 때 만난 첫사랑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를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았다.

하지만 단테는 당시 풍속에 따라 12세 때 피렌체의 도나티 가문의 딸 젬마와 약혼해 결혼했고 세 아들을 낳았다.


베아트리체가 18세 때 아르노강 위에 놓인 산타 트리니타 다리 앞에서 잠깐 만난 적이 있지만 베아트리체도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한 사이였다.

이후 베아트리체는 25세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떴고 단테가 그를 처음 본 장소였던 산타 마르게리타 성당에 묻혔다.


단테의 부인 젬마도 산타 마르게리타 성당에 묻혔다.

베아트리체를 평생 잊지 못한 단테는 '신곡'에서 단테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천상의 여인으로 묘사했다.

[단테가 평생의 연인 베아트리체를 만난 산타 크로체 성당. 작은 기와지붕이 살짝 튀어나온 문이 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영화로 제작된 댄 브라운의 소설 '인페르노'를 보면 단테의 생가를 가보지 않을 수 없다.

단테의 '신곡'을 모티브로 한 이 소설을 보면 주인공 로버트 랭던 교수는 단테의 생가 주변에서 주요한 사건 해결의 모티브를 얻게 된다.


단테의 생가는 단테 알리기에리가에 있다.

아주 작은 골목이어서 대충 보고 지나가면 휙 지나칠 수 있다.


단테의 흉상과 함께 포스터 역할을 하는 자줏빛 천을 찾으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곳은 단테의 생가로 알려졌으나 엄밀히 말하면 단테가 살았던 생가는 옆쪽으로 돌아가야 있다.


이곳은 단테의 기념품을 보관하는 박물관이다.

이 곳에서 조금만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단테가 평생의 연인 베아트리체를 만난 운명의 장소인 산타 크로체 성당이 나온다.

[단테 박물관 벽에 붙어 있는 단테 흉상.]


일반적인 성당과 달리 벽에 아주 작은 문이 붙어 있는 곳이어서 역시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지나칠 수 있다.

단테를 기리는 관광객도 많이 찾지만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연인들도 이 곳을 즐겨 찾는다.


산타 크로체 성당을 벗어나 북쪽으로 쭉 올라가면 아카데미아 미술관(Accademia di Belle Arti Firenze)이 나온다.

이 곳에 미켈란젤로의 걸작인 다비드 조각상 진품이 있다.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 길 안쪽 벽에 표지판이 붙어 있어 잘 살펴봐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원래 이 곳은 미술학도를 육성하기 위해 1784년 건립된 미술학교다.

지금도 미술학교 역할을 하는 이 곳에 피에트로 레오폴드가 수집품을 기증하면서 한편에 미술관을 개관했다.


미술관 또한 길 안쪽에 있어서 잘 살펴봐야 찾을 수 있다.

돌출 간판도 없고 벽에 미술관을 알리는 작은 표지판이 붙어 있을 뿐이다.

[아카데미아 미술관 중앙홀에 서 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진품 조각상.]


입장권을 끊고 안으로 들어가면 홀 중앙에 높이 약 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다비드상이 버티고 서 있다.

책이나 베키오 궁전 앞에 서 있는 모조품과 달리 압도적인 위용이 보는 사람을 짓누른다.


미켈란젤로는 26세 때 이 조각상을 만들었다.

원래 다비드는 이스라엘의 양치는 소년으로 돌팔매를 이용해 거인 골리앗을 물리쳐 유대민족의 영웅이 됐다.

[미켈란젤로는 잘못 사용해 방치된 대리석을 이용해 이 거대한 조각상을 만들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는 소년 다비드를 완숙한 성인으로 묘사해 영웅의 이미지를 부각했다.

한 손에 돌을 움켜쥔 채 당장이라도 적을 향해 팔매질을 할 듯 노려보는 이 조각상은 원래 베키오 궁전 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1527년 강풍에 날린 나무토막 때문에 왼손이 망가지는 등 수난을 겪자 1873년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이전했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에는 미켈란젤로의 노예 연작과 다른 미술가들의 작품도 전시돼 있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전시된 다양한 조각과 그림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인류의 꽃이 된 도시, 피렌체
김혜경 저
당신이 보지 못한 피렌체
성제환 저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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