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금지곡 4

미인: 블루레이

1970년대와 1980년대 동네 음반점들은 요즘 볼 수 없는 특이한 장사를 했다. 듣고 싶은 노래 목록을 적어서 가져가면 LP를 재생해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주고 돈을 받았다. 집에서 FM 라디오를 틀어 놓고 카세트테이프로 직접 녹음할 수도 있지만 노래 앞뒤로 치고 들어오는 DJ 멘트가 문제였다. 그래서 원곡을 깨끗하게 듣고 싶을 경우 주로 이용했다. 금지곡 테이프의 추억 싱글이 없는 국내 음반업계의 특징도 이런 장사가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였다. 아주 좋아하는 가수가 아닌 이상 듣고 싶은 노래 한 두 곡 때문에 LP나 카세트테이프를 사는 것이 부담스럽던 시절이었다. 동네 음반점의 녹음 서비스는 LP보다 음질이 떨어졌지만 원하는 곡들만 모아서 녹음한 일종의 편집 음반인 셈이어서 만족도가 높았다...

보헤미안 랩소디

1980년대는 금기의 시대였다. 서슬 퍼런 군사 정권 아래에서 영화 음악은 물론이고 책, 방송까지 모든 문화활동이 철저한 정부의 검열을 받았다. 이념을 떠나 조금이라도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철저하게 금지시켰다. 영화는 무조건 가위질당했고 책이나 음악은 금서나 금지곡으로 묶여 시중에서 사라졌다. 당시 록 음악 꽤나 듣는다는 록 키즈들 사이에 인기 있던 영국 밴드 퀸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노래 'Killer Queen' 'Bicycle race' 'Death On Two Legs' 등 숱한 곡이 국내에서는 금지곡으로 묶였고, 가장 결정적인 히트곡 'Bohemian Rhapsody'도 국내에서는 금지곡이어서 음반으로 발매되지 않았다. 이유도 가지가지였는데, 보헤미안 랩소디의 경우 염세적..

영화 2018.11.10

바보들의 행진(블루레이)

1970년대, 80년대 금지곡 중에는 영화음악이 많았다. 영화 '별들의 고향'에 나왔던 윤시내의 '나는 열아홉살이에요', 이장희의 '한 잔의 추억', 송창식의 '왜 불러' '고래사냥' 등이 대표적이다. 워낙 암울했던 시기여서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닌 가사에도 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최고봉은 단연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 나온 송창식의 노래들이다. 지금은 CD로 OST까지 나왔지만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가 폐지된 1996년까지 송창식의 '고래사냥'과 '왜 불러' 등은 방송에서 들을 수 없고, 음반판매도 할 수 없는 금지곡이었다. 그래서 하길종 감독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년)을 떠올리면 영상보다 노래가 먼저 생각난다. 영화도 거칠것 없는 가사의 노래만큼이나 파격적이다. 미..

일요일은 참으세요

부부였던 줄스 닷신 감독과 멜리나 메르쿠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 '페드라'와 '일요일은 참으세요'(Never on Sunday, 1960년)이다. 그 중 '일요일은 참으세요'는 국내에서 상영되지 못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주인공인 창녀를 떠받들고, 미국을 비판했다는 이유에서다. 그 바람에 정작 미국에서는 아카데미 주제가상까지 받은 멜리나 메르쿠리의 주제가도 국내에서는 한동안 금지곡이 됐다. 실제로 보면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지만 의외로 사회비판적인 정치색이 강하다. 영화 속에서 그리스 창녀는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알고 그리스 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존감이 강한 반면, 미국인 철학자는 잘난 체 하고 남을 무시해 타인의 삶을 바꾸려 든다. 결국 영화는 도덕적이고 평화주의자 행세를 하며 잘난척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