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김민선 7

사랑이 무서워

국내에서 화장실 코미디 연기는 가히 임창정을 따를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정우철 감독은 '사랑이 무서워'(2011년)의 주연을 제대로 골랐다. 임창정은 어수룩한 청년 상열 역을 맡아 미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애를 쓴다. 순진한 청년의 사랑을 이용만 하던 여인은 나중에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뜬다는 그렇고 그런 내용이다. 뻔한 내용을 채우는 것은 임창정 특유의 넉살과 화장실 개그다. 그가 출연한 일련의 작품처럼 똥과 민망한 성적 판타지를 풀어 웃음을 유발한다. 더러 웃음이 터지는 장면도 있지만 '색즉시공'에 미치지 못한다. 이야기 또한 예측 가능한 전개로 뒤로 갈 수록 힘이 빠진다. 로맨틱 코미디로 보기에는 러브 라인이 부족하고, 페이소스가 깔린 블랙 코미디로 보기에는 메시지의 전달력이 떨어진다...

하하하 (DVD)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2009년)는 제목 그대로 그 황당함에 하하하 웃게 되는 영화다. 언제나 그렇듯 홍 감독 특유의 엉뚱함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그의 영화를 여러 편 보았으니 이제는 익숙할 만도 한데, 언제나 그렇듯 그 엉뚱함이 낯설면서도 유쾌하다. 이 영화는 구성이 독특하다. 청계산에서 우연히 만난 선배와 후배가 술잔을 기울이며 자신들이 최근 겪은 일을 이야기하는 식으로 풀어간다. 그들이 각각 따로 경험한 낯선 이야기 속에는 공교롭게 두 사람이 동시에 존재한다. 서로가 서로를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한 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경험을 한 셈이다. 참으로 희한하면서도 기발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주체적인 삶이 타인에게는 객체일 수 있고, 반대로 그들에게는 아무 상관없는..

하하하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그렇듯 허허롭다. 영화 중간 어디서나 끊어도 이야기 전개에 지장이 없는 내러티브는 도대체 스토리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헷갈린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받은 '하하하'도 마찬가지. 캐나다로 떠나기 앞서 선배와 등산을 간 주인공이 청계산 중턱에서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다. 영화는 주거니 받거니 건네는 술잔처럼 두 사람의 이야기를 오가며 진행된다. 화자의 관점은 둘이지만, 사실 그 둘이 풀어놓는 이야기는 같은 내용이다. 공교롭게 같은 기간 통영에 머문 두 사람은 서로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지만 같은 주변인물들을 공유하며 서로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봤던 것. 그렇게 같은 사건이 다르게 다가올 수 있는 것 또한 세상살이의 묘미요, 다양성의 ..

영화 2010.06.13

미인도

조선시대 풍속화가였던 혜원 신윤복이 여자라는 가설에서 출발한 영화 '미인도'(2008년)는 금기시된 사랑을 다루고 있다. 남장 여인인 신윤복이 장돌뱅이 강무, 스승인 김홍도와 벌이는 삼각관계는 동성애와 사부 간의 위험한 사랑놀음이다. 결국 사랑 그 자체를 순수하게 그려보고 싶다는 신윤복의 대사처럼 영화 속 사랑은 그저 종이 위에 머무는 그림이 되고 만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지 못하고 공허한 것은 철저한 팩션이기 때문. 신윤복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거의 없고, 그의 그림이 여성적이라는 이유로 여자로 만들어버린 영화속 설정은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먼 허구일 뿐이다. 여기에 질투에 눈이 먼 스승이 끼어들고 암투가 빚어지면서 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식의 비극으로 치닫고 만다. 그만큼 구성이 ..

별빛속으로

황규덕 감독의 '별빛속으로'(2007년)는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배어있는 영화다. 영화를 보다보면 197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의 정서가 물씬 풍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교련복. 젖소처럼 흰색 바탕에 검은 점이 얼룩덜룩 찍힌 교련복은 정작 학창시절에 그렇게 입기 싫었는데, 지나고 나서 영화로 보니 추억으로 다가온다. 고교시절 교복자율화가 진행되면서 교복을 안입게 됐는데, 교련복은 변함없이 입었다. 지금도 수업시간에 교련을 하는 지 모르겠지만, 1980년대에는 모형 총을 들고 제식훈련을 받았다. 교련 수업이 있는 날이면 가방이 미어터지게 교련복과 베레모, 각반을 싸들고 학교를 갔다. 어찌나 무겁던지, 입고가면 낳았을텐데 학교에서는 교련복을 입고 등하교를 못하게 했다. 대학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