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피터 그리너웨이 4

피터 그리너웨이의 동물원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작폼을 좋아하는 이유는 보는 즐거움을 확실히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미술학도였던 그는 각 장면을 하나의 그림 액자처럼 꾸며낸다. 아닌게 아니라, 자신을 가리켜 "영화로 일하는 화가"라고 지칭했을 만큼 그리너웨이 감독은 영상미에 집착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줄거리를 떠나 프레임 하나 하나가 한 폭의 그림같다. 하지만 그가 영상으로 그린 그림은 비단 아름다운 그림만 있는 게 아니다. 미와 추, 삶과 죽음 등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영상을 통해 그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다른 세상의 모습을 비춘다. 피터 그리너웨어 감독이 각본을 쓰고 감독한 '피터 그리너웨이의 동물원'(A Zed & Two Noughts, 1985년)이라는 희한한 제목이 붙은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내용은 백조 때문에 ..

차례로 익사시키기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난해하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일들이 잔뜩 벌어진다. 그러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것은 그만의 독특한 작품관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이야기와 뛰어난 영상, 그리고 감성을 파고드는 음악이 어우러져 묘한 매력을 뿜어낸다. '차례로 익사시키기'(Drowning By Numbers, 1988년)도 마찬가지다. 일단 제목부터 범상찮다. 세 모녀가 연인인 남자들을 차례로 물에 빠뜨려 죽이는 내용이다.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는 여인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거대하고 복잡한 퍼즐이다. 그렇다보니 호불호가 갈릴 수 밖에 없는데, 이 작품을 즐기는 비결이 있다. 바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그대로를 느끼는 방법이다. 실제로 그리너웨이는..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영화들은 지적 유희를 즐길 수 있는 퍼즐 같다. 암시와 메시지, 복선으로 가득 찬 영상은 때로는 난해하기도 하지만 수천 조각의 퍼즐 맞추기를 완성하고 나서 느낄 수 있는 희열을 선사한다. 그 맛에 그리너웨이의 작품을 보게 된다. 그가 1989년에 만든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The Cook The Thief His Wife & Her Lover)도 마찬가지. 범상치 않은 제목의 이 영화는 잔인하며 폭력적인 도둑, 정부와 눈이 맞아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는 도둑의 아내, 그들을 돕는 요리사가 벌이는 아슬아슬한 이야기를 통해 욕망과 모순으로 가득찬 세상을 풍자한다. 전작인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이나 '차례로 익사시키기'처럼 은유로 가득 찬 작품이지만 난해한..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

피터 그리너웨이(Peter Greenaway) 감독의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The Draughtsman's Contract, 1982년)은 박상륭의 소설처럼 난해하다. 중세 영국 귀족의 저택에 초대받은 화가 네빌(앤서니 히긴스 Anthony Higgins)이 저택 그림을 그려주는 조건으로 백작부인 (재닛 수즈먼 Janet Suzman) 및 그의 딸과 잠자리를 갖는다. 모두 12장의 그림을 그리는 동안 백작(데이브 힐 Dave Hill)은 정원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사진 같은 그의 그림 속에 단서가 남는다. 여러 가지를 의심하던 화가에게 백작 부인은 상속자가 있어야 백작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와 잠자리를 했다는 사실을 실토한다. 모든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챈 화가는 그날 밤 귀족들에게 살해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