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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DVD / 블루레이

노스페이스 (블루레이)

울프팩 2014. 11. 11. 00:00

예전 스위스 출장 갔을 때 기차를 타고 알프스의 융프라우를 오른 적이 있다.
푸른 초원 위로 멀리 흰 눈을 이고 서 있는 봉우리들이 장관이었던 기억이 난다.

겉보기에는 아름답지만 그 봉우리 중에 하나가 무시무시한 아이거북벽, 즉 노스페이스다.
요즘은 아웃도어 브랜드로 더 유명하지만 노스페이스는 여러 봉우리의 북벽 가운데 가장 어렵기로 악명높은 아이거북벽을 가리킨다.

마터호른, 그랑드조라스와 함께 알프스의 3대 북벽으로 꼽히는 아이거는 독일어로 괴물을 뜻하는 오거에서 나왔다.
산에 거대한 괴물이 살면서 사람을 잡아먹는 설화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실제로 아이거북벽은 1930년대 9명의 등반가가 사망한 이래 지금까지 6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2년 8월 10일에도 한국인이 등정 후 내려오다가 사망했다.

90도에 가까운 직벽에만 붙이는 페이스라는 등반 용어가 붙을 만큼 산이 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적 등반가인 라인홀트 메스너는 아이거북벽을 세계 3대 난벽으로 꼽았다.

필립 슈톨츨 감독의 '노스페이스'(North Face, 2008년)는 바로 이 아이거북벽에 도전한 산악인들의 실화를 다뤘다.
나치 독일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 홍보차 전세계 산악인들을 대상으로 아이거북벽 등반을 부추긴다.

그때까지 아무도 성공한 적 없는 북벽 등정을 통해 올림픽을 홍보하는 이벤트로 삼기 위해서였다.
이때 독일 산악마을 베르히데스가덴에서 자란 두 명의 젊은이 토니 쿠르츠와 앤디 힌터스토이서가 여기 도전한다.

이벤트 보다 순전히 산이 좋아서였다.
토니와 앤디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빙벽을 가로 지르는 과감한 트래버스로 정상에 성큼 다가선다.

이들만 있었다면 최초 등정에 성공했겠지만, 부상당한 오스트리아팀을 구하고자 이들은 등정을 코 앞에 두고 하산한다.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악명 높은 눈보라에 갇혀 이들은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지고 만다.
영화는 무섭고도 가슴절절한 이들의 이야기를 한 치의 기교없이 드라이한 영상으로 잡아낸다.

여기에는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카메라 기교나 특수효과를 일체 배제하고 냉정하리만치 등반의 무서움을 적나라하게 표출한다.
이를 위해 감독은 아이거를 오르며 핸드헬드 카메라로 냉혹한 등정의 현실을 다큐멘터리처럼 잡아냈다.

그렇다고 드라마가 없는 것은 아니다.
두 청년과 어린 시절 함께 자란 여류 기자의 눈을 통해 숭고한 이들의 헌신을 가슴절절한 이야기로 엮었다.

그만큼 사실적인 영상과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2009년 독일영화제 베스트촬영상과 음향상 등을 수상할 만큼 잘만든 영화인데,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안타깝다.

1080p 풀HD의 2.40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DVD에 비하면 화질이 훌륭하다.

DVD 타이틀에서는 계단 현상이 보이고 어두운 장면에서 디테일이 현격하게 떨어지며 색도 번졌는데, 블루레이 타이틀은 칼 같은 윤곽선을 잘 살렸다.

 

특히 일부 장면에서는 필름의 질감을 잘 살린 거친 입자가 더 해져 등반의 고난을 잘 묘사했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도 리어 활용도가 좋아서 서라운드 효과가 좋다.

 

과거 1디스크 DVD의 경우 부록이 전혀 없었는데, 이번 블루레이 타이틀에는 제작과정, 삭제장면, 시각효과 분석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수록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융프라우행 기차가 통과하는 알프스의 산악마을인 클라이네 샤이덱. 실제 두 주인공의 등정 당시 기자들이 머물렀던 호텔과 멀리 아이거북벽이 보인다. 

세계 3대 북벽의 하나인 아이거북벽은 등반 역사상 사망자가 가장 많은 곳이다. 높이는 해발 3,970미터. 감독은 처음부터 산을 시각적으로 과장하거나 스타일리시하게 표현하지 않고 다큐멘터리 느낌의 산악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실화 속 주인공인 토니 쿠르츠와 앤디 힌터스토이서는 아이거에 오르기 직전까지 독일 산악부대원들이었다. 팔뚝에 산악부대 마크인 에델바이스가 보인다. 

그들은 험준한 산악지대인 베르히데스가덴 출신이다. 이곳에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별장이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장비도 지금보다 열악해 등산화도 없고, 삼으로 짠 로프로 산에 올랐다. 

워낙 산을 좋아했던 토니와 앤디는 부대 주둔지인 베르히데스가덴에서 틈난 나면 산에 올랐다. 특히 이 곳에서 훗날 아이거를 오를 때 써먹은 트래버스를 훈련하게 된다. 

힌터스토이서는 수직으로 곧추 선 벽을 반동을 이용해 가로지르는 획기적 방법의 트래버스에 성공해 정상에 성큼 다가선다. 지금도 이 곳을 그의 이름을 따서 힌터스토이서 트래버스라고 부른다. 

두 청년은 너무 가난해 기차표 살 돈이 없어 독일 베르히데스가덴에서 알프스까지 700km를 자전거로 달렸다. 두 배우는 촬영을 위해 암벽 등반기술을 익혔다. 

무시무시한 아이거북벽은 한 번 눈보라가 불기 시작하면 하루 종일 해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1979년에 아이거북벽을 처음으로 올랐다. 위험한 등반장면들은 그린스크린으로 찍은 뒤 실제 아이거북벽에서 찍은 장면과 합쳤다. 

아이거 북벽은 숱한 산악인들의 목숨을 빼앗은 끝에 1938년 7월 독일인 안데르 헤크마이어와 루트비히 뵈르그, 오스트리아인 프리츠 카스파레크와 하인리히 히러 등 4명의 연합팀에 의해 처음 정복됐다. 

토니와 앤디는 따로 오르던 오스트리아팀이 부상만 당하지 않았어도 아이거 북벽 최초 등정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상당한 오스트리아인들을 구하기 위해 이들은 정상 정복을 코 앞에 두고 내려온다. 

1938년 아이거 북벽 최초 등정에 성공한 헤크마이어는 2005년 98세로 타계했다. 그는 등정 당시 나치 깃발을 꽂았으나 나치와 관련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전후 등반가이드로 활동했다.

지금도 아이거북벽을 오르는 사람들은 토니와 앤디가 목숨을 걸고 개척한 루트를 많이 이용한다. 

엄혹한 추위에 동상이 걸려 손발은 물론이고 얼굴까지 시커멓게 썩어들어가는 영상을 보면 공포영화 못지 않게 무섭다. 그만큼 이 영화는 오락물로 만든 다른 산악영화와 달리 아주 사실적이다. 

기자가 돼서 등벽 현장을 취재 온 여자친구 루이제는 영화를 위해 만든 가공의 인물이다. 그는 훗날 산에서 죽어간 두 젊은이를 추억한다. "그 사랑이 살아가는 이유다"라고.

노스페이스
벤노 퓨어만 출연/Philipp Stolzl 감독/Florian Lukas 출연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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