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비에이 날씨는 변덕스럽다. 구름이 끼고 눈발이 날리다가 해가 뜨기도 한다.]
홋카이도(북해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풍경을 꼽으라면 단연 비에이다.
비에이라는 지명은 홋카이도 원주민인 아이누족 말로 비옥한 땅, 혹은 흐린 강이라는 뜻이 피이에에서 유래했다.
비에이는 홋카이도 가운데에 위치한 드넓은 벌판이다.
여름에는 이 곳이 보랏빛 라벤더를 비롯해 형형색색의 꽃밭으로 바뀌고 겨울에는 온통 설원이 펼쳐진다.
국내에는 예전에 배우 소지섭이 출연한 소니의 카메라 광고로 유명한 곳이다.
비에이 관광은 기차나 버스, 택시, 렌트카를 이용하는 등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현지 한국인 가이드를 통해 패치워크 로드나 파노라마 로드 등 코스별로 둘러보면 좀 더 편하다.
[비에이의 명물인 흰수염 폭포.]
시로가네 온천에 위치한 흰수염 폭포(시라히게노타키)는 눈 녹은 물이 흘러 내리는 모습과 주렁 주렁 달린 고드름이 마치 흰 수염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 곳의 풍광은 참 독특하다.
하얗게 쏟아져 내리는 물 줄기 아래 흐르는 개울은 에메랄드 빛이다.
온천수에 섞인 성분 때문에 물 빛깔이 옥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작은 비에이 역 앞에서 바라 본 비에이 마을 풍경.]
시로가네 온천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비에이 마을이 나온다.
작은 역이 위치한 비에이 마을은 특이하게 건물 꼭대기에 네 자리로 된 숫자가 써있다.
이를 건물을 지은 연도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연도가 아니다.
눈이 많이 내렸을 때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상가 건물에만 일종의 지번처럼 고유 숫자를 새겨 넣었다.
[일본 사진작가 마에다 신조(前田真三)의 사진 기념관 다쿠신관(拓真館).]
비에이가 널리 알려진 것은 일본의 사진작가 마에다 신조(1992~98년) 덕분이다.
그는 이 곳에 반해서 눌러 살며 수 많은 풍경 사진을 찍어 널리 알렸다.
비에이에는 그의 사진을 모아 놓은 포토 갤러리인 다쿠신관이 있다.
이 곳 풍경도 아름답다.
다쿠신관을 정면으로 바라본 채 왼편으로 걸어가면 자작나무가 길게 늘어선 숲을 만날 수 있다.
또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하얀 눈이 덮힌 구릉 위에 늘어선 나무들을 볼 수 있다.
[패치워크 길의 명물인 세븐스타 나무. 맨 왼쪽 둥그스름한 모양을 한 나무가 세븐스타 나무다.]
비에이는 풍경이 아름답다보니 여러 광고에 배경으로 등장한다.
특히 특정 광고를 찍은 장소는 해당 광고명이 붙어서 관광코스가 됐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세븐스타 나무다.
일본 담배회사 세븐스타가 1976년에 촬영한 광고에 나오는 나무로, 주변에 10여그루 자작나무가 줄지어 서 있어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얼마나 추운 지 전주와 전선에도 고드름이 주렁 주렁 달렸다.]
마일드세븐 언덕도 패치워크 길의 명물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1977년 마일드세븐 담배 광고에 나온 곳이다.
[마일드세븐 언덕. 하얗게 덥힌 눈 뒤로 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마일드세븐 언덕도 그렇고 여러 유명 장소들에 가보면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막아 놓은 곳이 많다.
이유는 눈 덮힌 들판이 대부분 농작물 재배를 위한 사유지이기 때문이다.
가이드에 따르면 신발에 붙은 세균 때문에 토양이 오염될 수 있어 이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요즘은 중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으면서 밭을 짓밟는 사람들이 많아 농장주들이 골치를 썩이고 있단다.
[예전에는 눈 덮힌 언덕을 가로질러 나무 밑까지 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눈밭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놓았다.]
급기야 소지섭이 등장하는 소니 CF의 배경이 된 '철학의 나무'는 이를 보다못한 농장주가 나무를 잘라 버렸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기도 한데, 홋카이도 관광청에서 보조금이라도 주고 보호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2008년 들렀을 때는 그 아래서 사진도 찍었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 없어 많이 아쉬웠다.
대신 이번 비에이 방문 길에는 독특한 풍경을 봤다.
[비에이 들판에 늘어선 나무들은 이렇게 투명한 얼음옷을 입었다. 비에이에서도 보기 드문 풍경이다.]
마침 2,3일전 비가 왔는데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나무에 내린 빗방울이 순식간에 얼어붙으면서 투명한 얼음 옷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나뭇가지에 얼어붙은 빗물들은 햇빛을 받아 은색으로 반짝이는 모습들이 더 할 수 없이 아름답다.
비에이에서도 이런 풍경은 여간해서 보기 힘든 기이한 풍경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 지 여기저기 사진작가들이 벌판으로 차를 몰고 와 사진을 찍고 있었다.
[홋카이도의 지붕인 대설산(大雪山), 즉 다이세쓰산이다.]
비에이에는 홋카이도의 지붕이라고 일컫는 다이세쓰산이 있다.
193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 곳은 일본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이다.
2,000m 이상 봉우리가 10여개나 되는 이 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아사히다케로 해발 2,290m다.
2015년 12월22일, 다이세쓰산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여성 산악인 다니구치 게이가 등정 중 사고로 사망했다.
국내 뉴스에도 사망사고가 보도된 그는 정복하지 못했어도 한 번 간 곳은 다시 가지 않는다는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로 유명하다.
전세계 고봉을 여러 군데 정복한 그는 2009년 세계 산악인들에게 가장 영예로운 상으로 꼽히는 황금피켈상을 여성 가운데 최초 수상했다.
다니구치 게이는 사고 당일 1984m 높이의 구로다케 봉우리를 정복한 뒤 내려오던 중 동료들과 떨어져 화장실에 들렸다가 실족사했다.
구조대는 이틀 동안 수색한 끝에 정상으로부터 700m 내려간 지점에서 눈에 파묻힌 그의 시신을 찾아냈다.
[비에이를 둘러본 뒤 저녁 느즈막히 들린 백은장 온천에서 하루의 피로를 씻어냈다.]
비에이에서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하쿠긴소(白銀莊) 온천이다.
도카치다케산 중턱에 위치한 이 곳은 실내탕과 노천탕이 함께 있다.
실내탕의 경우 남녀가 구분돼 있고, 남녀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혼탕은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야 한다.
노천탕의 경우 온도에 따라 3가지로 구분돼 있는데,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채 머리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 참으로 상쾌하다.
특히 노천탕에 들어갈 때 홋카이도 메론으로 만들었다는 메론 환타를 사들고 가서 눈에 꽂아놓았다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채 마시면 맛이 일품이다.
지금도 메론 환타는 다시 먹고 싶을 만큼 아주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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