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예술이 어우러진 도시인 파리는 곳곳에 유명 작가들의 흔적이 많이 묻어 있다.
개중에는 유명 작가들과 얽힌 추억 속 장소이기도 하고 일부는 작품 속 배경이 됐다.
전자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곳이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다.
영화 '비포 선셋'에서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다시 재회하는 곳으로 등장하는 서점이다.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 전경.]
1919년 11월에 미국 문학전문서점으로 파리의 세느 강변에 문을 얼어 100년이 넘은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Shakespeare & company)는 오래된 느낌이 물씬 풍겨나는 작지만 유서깊은 서점이다.
서점 주인인 실비아 비치가 워낙 독특한 사람이어서 고가의 해외 서적을 판매 뿐 아니라 대여도 해줬고 가난한 문인들을 서점에서 재우기도 했다.
덕분에 앙드레 지드, 제임스 조이스, 헤밍웨이 등 유명 문인들이 이 곳을 자주 찾았다.
파리를 처음 방문해도 이 서점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서점 2층에 이 곳을 찾은 사람들이 붙여 놓은 메모가 잔뜩 붙어 있다.]
워낙 유명한 서점이다보니 낮이나 밤이나 관광객으로 붐비기 때문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좁은 계단을 통해 서점 위아래를 부지런히 오가며 구경하기 바쁘다.
서점 한 켠에서는 작가와의 만남이나 시 낭송회, 또는 피아노 연주 등이 열리기도 한다.
동네 서점이 점점 사라지고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만 남은 우리네 풍경과 사뭇 다른 문학적 정취가 풍기는 곳이다.
[비좁은 서점 내부. 원체 유명한 곳이었지만 영화 '비포 선셋' 이후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파리의 팔레틴 거리에 위치한 생 쉴피스 성당(Eglise St. Sulpice)은 영화 '다빈치 코드'를 본 사람들에게는 낯익은 곳이다.
댄 브라운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에 등장하는 이 곳은 1646년부터 1780년까지 134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됐다.
6세기경 부르주의 주교였던 성 쉴피스에게 헌정된 곳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길이 113m, 폭 58m, 높이 34m 규모를 자랑하는 이 성당은 파리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이다.
[생 쉴피스 성당과 카트로 포앵 카르디노 분수.]
특이한 점은 교회 양 끝에 2개의 탑이 있는데 오른쪽 탑이 왼쪽보다 5m 가량 낮다.
탑을 설계한 장 밥티스트 세르반도니가 공사 중 자살해서 미완성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보들레르와 사드가 세례를 받았고 빅토르 이고의 결혼 장소이기도 한 이 곳에는 내부에 여러가지 볼거리가 있다.
우선 성당 앞에 비스콘티가 1847년에 만든 카트로 포앵 카르디노 분수가 있다.
[생 쉴피스 성당 출입문 위쪽에 설치된 세계에서 가장 큰 파이프 오르간.]
또 세계에서 가장 큰 파이프오르간이 있다.
파이프 개수만 무려 6,700여개인 이 오르간은 1781년 클리코가 처음 만들었다.
제단에는 장 밥티스트 피갈이 조각한 성모와 아기상이 있고, 출입구쪽 내부 벽면에는 들라크루와가 그린 프레스코화 '천사와 싸우는 야곱' '사원에서 쫓겨난 헬리오도로스'가 마주보고 있다.
여기에 '다빈치 코드'에 나오는 해시계 그노몬이 있다.
[생 쉴피스 성당 제단에 놓인 피갈의 성모와 아기상.]
1737년에 장 밥티스트 랑게 드 게르시 신부가 부활절 날짜를 계산하려고 이 해시계를 만들었다.
끝으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위대한 프랑스인들이 잠든 국립묘지 팡테옹(Pantheon)이다.
국립묘지이지만 우리네 현충원과 달리 거대한 둥근 지붕을 가진 건물이다.
원래는 루이 15세가 병이 나은 것을 감사하기 위해 1744년 지은 생 주느비에브 교회였다.
[둥근 돔이 특징인 팡테옹.]
공사 도중 돈이 모자르고 사고가 발생해 지연되면서 1789년 프랑스혁명 때 높이 83m, 길이 110m, 폭 80m 규모로 완공됐다.
돔모양은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을 본 땄다.
돔 천장에는 1811년 나폴레옹의 지시로 코로가 그린 성 주느비에브 그림이 있다.
여기에는 커다란 추가 달려 있는데 1849년 푸코가 이를 이용해 지구의 자전을 실증한 실험을 해서 유명하다.
[웅장하면서도 장엄한 팡테옹 내부.]
혁명 정부는 팡테옹을 국립묘지로 바꾸고 고대 로마의 모든 신을 모신 만신전이라는 뜻의 팡테옹으로 명명했다.
지하에 내려가 보면 방처럼 여러 구획을 나눠 놓았고 여기에 유명인들의 커다란 관이 안치돼 있다.
대표적으로 미라보, 볼테르, 장 자크 루소, 빅토르 위고, 퀴리 부인, 앙드레 말로 등의 관이 여기 놓여 있다.
가장 최근에 안장된 인물들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저항군이었던 주느비에브 드골 앙토니오즈, 제르멘 티용 등 여성 2명과 피에르 브로솔레트, 장 제 등 총 4명의 레지스탕스다.
[팡테옹 전면에 새로 안치된 4인의 레지스탕스 초상이 걸려 있다.]
이들은 2015년 5월27일 팡테옹에 안장됐다.
이 가운데 드골 앙토니오즈는 샤를르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의 조카딸로,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정보원으로 활동하다가 나치에게 체포돼 집단 수용소에서 종전을 맞았다.
레지스탕스 포로들의 탈출을 도운 제르멘 티용은 종전 후 인류학자가 활동했다.
이 두 사람은 마리 퀴리 이후 처음 팡테옹에 안치된 여성들이다.
[팡테옹 국립묘지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조형물.]
라디오 방송을 한 피에르 브로솔레트는 레지스탕스로 활약하다가 1944년 게슈타포에게 체포돼 고문을 받던 중 조직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투신 자살했다.
제 2 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교육부장관이었던 장 제는 망명 정부를 건설하려다가 나치에 체포돼 1944년 옥중에서 살해됐다.
팡테옹에 숨은 문화재 중 하나가 바로 바그너 시계다.
19세기에 만든 바그너 시계는 관광객들이 눈여겨 보지 않는 유물인데, 여기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팡테옹 지하에 안치된 유명인들의 관. 장 자크 루소의 관이다.]
1960년대 팡테옹 담당 직원 중 하나가 매주 한 번씩 시계 태엽을 감아줘야 하는 일이 귀찮아서 일부러 부속을 망가뜨리는 바람에 시계가 멈춰섰다.
하지만 아무도 이를 눈여겨 보지 않아 몇 십년 동안 시계가 정지해 있었다.
그런데 이를 눈여겨 본 집단이 바로 파리의 문화게릴라인 UX다.
이들은 거미줄처럼 얽힌 파리의 지하 터널을 몰래 누비고 다니는 독특한 집단이다.
[각 구획의 입구에는 안치된 인물들의 이름이 써 있다. 빅토르 위고와 에밀 졸라의 이름이 보인다.]
파리의 대학생 6명이 1980년 파리의 프랑스 통신성 지하실에서 수십 장의 지하시설물 관리도를 훔친 뒤 도시의 실험이라는 뜻의 UX(Urban eXperiment)를 결성했다.
프랑스 정부는 수십 년이 지나도록 설계도 도난 사실조차 몰랐다.
이후 파리의 지하 세계는 밤마다 UX의 영토가 됐다.
이들은 지하에 사무실까지 만들고 거미줄처럼 얽힌 지하 통로를 이용해 문화 유적과 건물 등 파리 곳곳을 들락거렸다.
[팡테옹을 향하는 길에 만난 유명 아이스크림 전문점 아모리노.]
단순히 들락 거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파리 시내의 유적 14군데를 몰래 수리했다.
그러다가 2005년 9월 UX의 장 밥티스트 비오트 회장이 팡테옹을 들락 거리다가 바그너 시계가 멈춰선 것을 발견했다.
유명 시계회사에서 시계공으로 일한 그는 그때부터 UX 회원들과 함께 바그너 시계를 수리했다.
약 600만원의 수리비 또한 해적같은 UX 회원들이 걷어서 마련했다.
이렇게 1년 동안 고쳐서 2006년 9월부터 바그너 시계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전혀 모르던 파리 정부와 팡테옹 측은 갑자기 시계가 작동하자 기겁했다.
언론이 달려들어 미스테리를 파헤치기 시작하고 경찰까지 나서 수사를 하자 UX는 자신들의 정체와 함께 바그너 시계 수리 사실을 공개했다.
파리 경찰은 득달같이 UX 회원들을 잡아들여 문화재 훼손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붙였으나 재판부는 팡테옹에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렇게 풀려난 UX 회원들은 지금도 파리 지하를 누비고 있단다.
파리 경찰이 이들을 감시하고 있지만 실제로 어떤 활동을 하는 지 증거를 잡지 못했다고 한다.
참으로 영화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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