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생트 샤펠(Sainte Chapelle)은 노트르담 성당이 있는 시테섬에 위치한 성당으로 법원과 붙어 있다.
일정이 바쁜 관광객들은 노트르담과 루브르 박물관 정도만 보고 이 곳을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데 놓치기 아까운 명소다.
성스러운 예배당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 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래스들이 성당의 벽면을 수놓고 있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스테인드 글래스들은 섬세함의 극치를 보여 준다.
[프랑스 최고재판소, 즉 대법원과 붙어 있는 생트 샤펠. 내부를 구경하려면 10유로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길이 36m, 폭 17m, 높이 42.5m의 이 건물은 1245년에 십자군 원정에 나섰던 루이 9세가 콘스탄티노플에서 재정난에 시달리던 동로마 황제 보두앵 2세를 돕기 위해 사들인 예수의 성스러운 유물들을 보관하기 위해 지었다.
해당 유물은 예수의 가시 면류관, 십자가의 못과 성모 마리아의 머리카락 등 70여점이다.
성물은 2개층 가운데 위층에 보관됐다.
여기 어울리도록 위층은 1,130개 이상의 구약성경 대목을 그림으로 새긴 호화로운 스테인드 글래스로 장식됐는데, 1485년 샤를 8세가 기증한 서쪽 장미창만 요한계시록을 토대로 제작됐다.
[요란한 스테인드 글래스 중 하나에 루이 9세가 성물을 받는 모습도 들어 있다. 유난히 신앙심이 깊었던 루이 9세는 예수의 고난을 체험하기 위해 맨 발로 다니고 나병 환자들의 발을 씻겨 주었다.]
그러나 왕의 사후 관리가 허술해지면서 곡물 저장고로 쓰이다가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법률문서 보관소가 됐다.
가시면류관 등 일부 성물은 생 드니 성당과 노트르담 대성당 등으로 이송됐다.
이후 1836년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성당 복원을 주창하며 이듬해부터 이년 동안 외젠 엠마뉴엘 비올레 르 뒤크가 건물을 복원했다.
여기에 나폴레옹 3세는 높이 75m의 첨탑을 덧붙였다.
[건축가 피에르 드 몽트뢰가 1242년 공사를 시작해 6년간 공사 끝에 생트 샤펠을 완성했다.]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22km 가량 떨어진 베르사유(Versailles) 궁전은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갈 수 있다.
이 곳은 루이 13세가 사냥을 즐기기 위해 개발한 샤낭터에 지은 작은 성이 확대됐다.
이를 태양왕 루이 14세가 1661년 건축가 르보 등을 시켜서 50년간 엄청난 비용을 들여 대궁전으로 확대했다.
루이 14세는 1672년 왕궁을 아예 여기로 옮기면서 베르사이유를 프랑스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베르사유 궁전 앞에 서 있는 루이 14세 동상.]
이후 1837년 박물관으로 바뀐 베르사유 궁전은 여러 용도로 쓰였다.
1871년 독일 황제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승리한 뒤 이 곳에서 황제 즉위식을 가졌고, 1919년 제 1 차 세계대전 종전 후 강화조약이 이 곳에서 체결됐다.
베르사유 궁전은 내부에 수 많은 그림과 화려한 실내 장식으로 유명하지만 드넓은 정원으로도 이름이 높다.
워낙 넓어서 걸어다니며 쉬엄 쉬엄 보는게 만만치 않다.
[베르사유 궁에는 예전에 화장실이 없었다. 귀족들은 정원에서 그냥 볼 일을 봤고 왕은 손뼉을 쳐서 요강을 대령하게 했다.]
하지만 파리 여행에서 가장 많이 걸었던 곳은 루브르 박물관(Louvre Museum)이다.
워낙 방대한 전시품이 있는데다가 그림을 좋아하다보니 모두 보고싶은 욕심에 하루 온 종일 박물관을 돌아 다녔다.
루브르 박물관은 영국의 대영박물관, 바티칸시티의 바티칸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힌다.
예전에 대만에 들렸더니 타이페이 박물관이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라고 주장하는데 루브르 박물관을 보면 과연 타이페이 박물관이 포함될까 의구심이 든다.
[튈르리 공원을 가로질러 가다보면 루브르 박물관 앞에 서 있는 개선문을 만날 수 있다.]
루브르 박물관은 원래 요새였다.
1190년 필립 2세가 요새로 지은 뒤 루이 14세 시절 베르사유로 궁전을 옮기면서 파리에 남아 있던 왕실 예술품을 보관하는 곳으로 쓰였다.
이후 1793년 궁전 일부를 미술관으로 쓰면서 오늘날 박물관으로 발전했다.
이 곳에 전시된 작품은 38만여점에 이른다.
[루브르 궁 앞에 위치한 거대한 유리 피라미드. 미테랑 대통령 시절인 1989년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에이오 밍 페이가 만들었다.]
따라서 구경할 계획을 잘 세우지 않으면 워낙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라 몹시 힘들 수 있다.
보통 단체로 관람 온 사람들은 '모나리자' '비너스' 니케 상' 등 대표적인 작품 몇 점만 보고 빨리 사라진다.
꼭 봐야할 작품이 무엇인 지 잘 모르겠다면 사람들이 벌떼같이 모여있거나 유독 가이드가 멈춰 선 채 길게 설명하는 작품들을 눈여겨 보면 된다.
루브르에는 우리말 팸플릿도 있고 우리말 음성으로 제공되는 안내기기도 있으니 돈내고 빌리면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거대한 피라미드 지하에는 똑같은 모양의 역삼각형이 나온다. 영화 '다빈치 코드'에 등장하는 곳이다.]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풍경이 '사모트라키아의 승리의 여신', 즉 영어권에서 나이키로 부르는 니케 여신상에 잔뜩 모여 서 있는 사람들이다. 기원전 19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명한 이 여신상은 그리스의 사모트라키아섬에서 출토돼 이런 이름이 붙었다.]
재미있는 것은 유명한 '사모트라키아의 승리의 여신상'을 보면 날개가 2개인데 원래 왼쪽 날개만 있었다.
이를 박물관 측에서 왼쪽 날개를 본 떠 오른쪽 날개도 만들어 붙였다.
더불어 루브르의 대표선수인 '모나리지'도 늘 진품 논란에 휩쌓였다.
과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이 맞느냐는 논란이다.
이런 논란이 이는 이유는 1911년에 도난을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모나리자 앞에 몰려든 사람들. 바짝 다가서서 보려면 상당히 오래 기다려야 한다. 그림 앞에는 일정 거리 이상 접근할 수 없도록 보호줄이 쳐 있다.]
당시 모나리자를 훔친 범인은 설치를 맡았던 이탈리아 노동자였다.
그는 5분만에 그림을 떼어내 사라졌는데 문제는 이후에 나타났다.
그림을 훔친 인물은 발피에르노라는 화가의 사주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발피에르노는 진품을 감쪽같이 베끼는 유명한 모사 화가였다.
[역시 루브르의 인기 스타인 밀로의 비너스.]
발피에르노는 모나리자 도난 이후 6점을 똑같이 그려서 진품이라고 팔아 먹었다.
그런데 경찰이 도난범을 체포한 뒤 진품을 되찾았다고 발표하자 모작을 구입한 사람들이 분노했다.
이에 발피에르노는 경찰이 찾은 그림이 가짜라고 주장하며 그림을 구입한 사람들을 달랬다.
발피에르노는 재판을 받았으나 감옥에 가지는 않았다.
이 사건 이후 모나리자의 진품 논란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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