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데쓰 프루프(블루레이)

울프팩 2021. 9. 26. 13:27

악동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이 만든 '데쓰 프루프'(Death Proof, 2007년)는 과거 동시상영관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전형적인 B급 영화다.
이 작품은 로버트 로드리게즈(Robert Rodriguez) 감독이 만든 '플래닛 테러'와 하나로 묶여서 '그라인드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상영됐다.

미국에서는 두 편이 하나의 작품으로 연속해 동시 상영됐고, 국내에서는 각기 나눠 개봉했다.
참고로, 그라인드 하우스는 동시상영관을 말한다.

지금은 생소하지만 1970~80년대 국내에는 동시상영관 천지였다.
시내 개봉관이 아닌 동네 극장은 모두 동시상영관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중, 고교 시절 시험이 끝나면 학교에서 단체로 '벤허' '머나먼 다리' 등 영화를 보러 갔는데, 그럴 때마다 친구들과 함께 빠져나와 동시상영관으로 달려갔다.
우선 동시상영관은 시도 때도 없이 표를 팔았다.

심지어 상영 중간에도 표를 팔았는데, 그래도 괜찮은 것이 중간부터 보고 기다렸다가 다음 회차를 또 보면 됐기 때문이다.
물론 좌석번호도 없다.

좌석도 지금처럼 푹신한 시트가 아닌 이발소 의자처럼 비닐로 된 딱딱한 의자였다.
영화는 낡은 영사기와 셀 수도 없이 틀어댄 필름 때문에 시종일관 화면 가득 비가 내리는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 중간에 필름이 끊기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어른들은 극장 안에서 담배를 피워 물고 기다렸고 애들은 소리를 질러댔다.
그곳에서 이소룡을 만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환호했으며 얄개 이승현과 함께 웃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영화 속에서 이 같은 동시상영관의 추억을 살려냈다.
실제 동시상영관 영화를 보는 것처럼 화면 가득 비가 내리고 잡티와 스크래치가 난무한다.

과거 동시 상영했던 B급 영화의 추억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영상에 흠집을 냈다.
영상만 그런게 아니라 내용도 전형적인 B급 영화다.

스턴트맨 출신의 마초맨인 주인공 마이크(커트 러셀 Kurt Russell)는 여자들이 탄 자동차만 쫓아다니며 들이받아 죽인다.
그의 악행과 분노는 아무 이유가 없다.

영화는 왜 마이크가 미쳐 날뛰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마이크의 광폭한 행동에 같이 흥분하고, 마이크가 처절하게 박살 나는 장면을 보며 환호하면 될 뿐이다.

영화는 심오한 메시지와 철학을 찾는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액션이 끝남과 동시에 비디오 게임처럼 갑자기 막을 내린다.
엔딩 타이틀과 함께 흐르는 경쾌한 음악은 B급 영화에서 더 이상 무엇을 바라냐는 듯 비웃는 타란티노 감독의 웃음소리 같다.

비록 이야기의 개연성은 떨어지고 황당하지만 상영시간이 더 할 수 없이 즐거운 오락물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제대로 만든 B급 영화다.

최근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플래닛 테러'와 함께 합본팩으로 묶여 나왔다.
과거 블루레이가 디스크 1장에 두 작품을 담았다면 이번 타이틀은 각각 별개의 디스크에 수록해 총 2장으로 구성됐다.

이유는 '플래닛 테러'와 이 작품이 삭제된 부분을 포함해 상영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대신 부록도 각각의 본편 디스크에 함께 수록했다.

안타까운 것은 과거 한 장으로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두 작품 사이에 타란티노와 로드리게즈 감독이 가짜로 만든 재미있는 예고편이 여럿 들어갔는데, 이번 타이틀에서는 이 부분이 빠졌다.
부록에 넣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의도된 스크래치 때문에 화질을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그런 와중에도 강렬한 색감이 눈에 띈다.

돌비 트루 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요란하다.
그만큼 채널 분리가 확실하게 잘 돼 있다.

다만 타란티노 감독이 음향 조차 일부러 끊어지고 튀게 만들어 간혹 이상하게 들릴 때가 있다.
부록으로 자동차 스턴트, 배우들 소개와 인터뷰, 편집,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가 부르는 노래가 노컷으로 들어있다.

부록에 모두 한글자막이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화면 가득 잡티와 필름 스크래치가 보인다. 1970년대 동시 상영한 B급 영화처럼 보이도록 일부러 흠집을 냈다.
매력적인 다리를 지닌 연예인 정글 줄리아 역할은 시드니 타밀라 포이티어가 연기.
타란티노 감독이 술집 주인으로 카메오 출연했다.
랩 댄스를 추는 알린을 연기한 바네사 페를리토.
'플래닛 테러'에서 다리에 자동소총을 부착한 로즈 역할로 나온 로즈 맥고완이 이 작품에서는 커트 러셀의 차를 얻어타는 여인으로 등장. 1960년 여배우 바바라 부세처럼 보이도록 금발로 염색했다.
더 코스터스의 유명한 노래 'Down in Mexico'에 맞춰 추는 랩 댄스 동작은 바네사 페를리토가 구상했다.
마이크는 일부러 무지막지한 교통사고를 내서 여자들을 죽인다. 희생양이 된 붉은색  승용차는 혼다 시빅, 들이받은 마이크의 차는 셀비 노바.
'플래닛 테러'에서 마취 의사로 나온 마리 쉘톤과 보안관을 연기한 마이클 팍스가 이 작품에서도 그대로 의사와 보안관으로 등장해 두 작품이 연결되는 것을 보여줬다.
중간에 화면이 흑백이 됐다가 다시 컬러로 바뀐다. 커트 러셀은 배우 빙 러셀의 아들이다. 커트는 실제 자동차 운전을 아주 잘한다. 그의 여동생도 인디 500 자동차 경주에 참가한 최초의 여성 카레이서다.
이 영화는 삽입곡들도 좋다. 랩 댄스 중간에 화면이 건너뛰며 필름이 끊어지는 것까지 흉내냈다.
스턴트우먼을 연기한 조이 벨(오른쪽)은 실제 뉴질랜드 출신의 스턴트우먼이다. 그는 '킬 빌'에서 우마 서먼, '캣 우먼'에서 샤론 스톤 대역을 맡아 스턴트 연기를 했다. 또 TV시리즈 '원더우먼'에서 린다 카터 대역을 한 지니 에퍼와 함께 '더블 데어'라는 다큐멘터리도 찍었다.
배우 리를 연기한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 노래 솜씨가 일품이다. 부록에 그의 노래 솜씨를 알 수 있는 영상이 들어 있다.
제목 데쓰 프루프는 방수를 뜻하는 워터 프루프처럼 죽음을 막아준다는 뜻. 스턴트맨들이 위험한 사고때 죽지 않도록 설계된 자동차를 의미한다.
닷지와 닷지의 결투. 흰색 차는 1970년판 닷지 챌린저, 검은색은 닷지 차저.
가공할 자동추 추격 장면은 역대 유명 스턴트맨들이 총동원됐다. 버디 조 후커라는 노장 스턴트맨이 커트 러셀 대신 검은색 차를 몰았다.
이 작품과 '플래닛 테러'의 스턴트 연출은 제프 대쉬노가 담당. 타란티노 감독은 일부 장면을 직접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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