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도둑들

울프팩 2012. 7. 28. 06:00
방송가 은어 중에 '쪼(조)가 생긴다'라는 말이 있다.
오래 방송을 하다 보면 그 사람만의 어투나 동작 등 특징이 굳어지는 것을 말하는데, 좋게 표현해 스타일화 하는 것이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를 보면 그만의 '쪼'가 있다.
'범죄의 재구성' '타짜'에 이어 이번 '도둑들'(2012년)까지 그가 연출한 일련의 작품들을 보면 그만의 특징이 보인다.

마치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영화처럼 여러 명의 스타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정신없이 돌아친다.
대사도 김수현 드라마처럼 관객이 미처 생각할 틈 없이 아귀가 딱딱 맞는 얘기를 속사포처럼 쏘아댄다.

특히 주인공들의 팀웍은 강한 자를 몰아치는데 집중되며 긴장감을 놓치지 않도록 적당한 반전도 연출한다.
히치콕이나 알트만 스타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앞선 작품들이 흥행하면서 최 감독만의 공식이 생긴 듯 싶다.

이 작품도 예외가 아니다.
김윤석, 김혜수, 전지현, 이정재, 김수현, 김해숙, 오달수, 여기에 홍콩배우 임달화까지 가세해 재기발랄한 대사를 정신없이 주고 받으며 서로 속고 속이는 도둑들의 싸움판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그만큼 영화는 적당한 웃음과 흥분을 선사하며 입장료 값어치를 충분히 한다.
하지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보안이 철통같은 카지노 호텔에서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설정은 할리우드 영화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를 보는 것 같고, 외줄 하나에 의지해 마천루를 오르 내리며 도둑질을 하는 과정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나 여타 외국 영화에서 익히 봐왔던 장면들이다.
새로운 것이 있다면 허름한 아파트 외벽을 타잔처럼 뛰어다니며 자동소총을 쏴대고 총격전을 펼치는 장면인데, 하필 장소가 부산이라는 점이 현실성을 떨어뜨린다.

도둑질 과정에 동원하는 장비들도 보면 과연 한국의 도둑놈들이 맞나 싶다.
따라서 이 영화는 사실성 운운하며 따지고 들면 빈틈이 많이 보이는 만큼, 이를 모두 덮어두고 알면서 속아주는 레슬링 경기를 즐기듯 느긋한 마음으로 스타들의 연기플레이를 관전하면 된다.

그러면 '엽기적인 그녀' 이후 가장 어울리는 배역을 찾은 전지현의 변신과 배우들의 요란한 액션, 홍콩 마카오의 화려한 풍광이 여유롭게 눈에 들어 온다.
캐스팅부터 로케이션까지 곳곳에 돈들인 흔적이 보일 정도로 영상은 화려하다.

문제는 최 감독의 '쪼'가 언제까지 먹힐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그의 '쪼'가 시험대에 오른 재미있으면서도 아슬아슬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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