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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DVD / 블루레이

로프

울프팩 2013. 4. 13. 00:53
영국 희곡작가 패트릭 해밀턴의 원작을 각색한 '로프'(Rope, 1948년)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공동설립한 영화사 트랜스애틀란틱의 첫 작품이자, 히치콕의 첫 번째 컬러영화다.
히치콕은 해밀턴의 희곡에 유명한 실화인 레오폴드와 로엡 사건을 섞었다.

1924년 미국 시카고대 학생이며 동생애 연인이었던 네이던 레오폴드와 리차드 로엡은 니체의 초인론에 빠져 우수한 두뇌를 입증하려고 이유없이 친구를 살해했다.
결국 꼬리가 밟혀 둘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히치콕은 이야기 뿐 아니라 구성도 연극을 그대로 따랐다.
즉, 영화는 마치 연극처럼 컷 없이 처음부터 한 씬으로 쭉 이어진다.

엄밀히 말하면 배우의 등을 크게 클로즈업으로 잡는 식의 트릭을 써서 컷을 넘겼지만 영화 속에서는 어찌나 자연스럽던 지 눈여겨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
그만큼 이 영화의 카메라 움직임은 물 흐르듯 유연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무대도 두 청년의 아파트라는 제한된 공간에 국한한다.
그 안에서 카메라는 마치 유영하듯 인물들을 따라 옆으로 움직이거나 문을 드나든다.

그러다가 인물이 멈추면 줌으로 당겼다가 다시 투샷 또는 풀샷으로 멀어지고, 여기에 인물이 걸어들어와 프레임 안을 가득 채운다.
일련의 과정이 어찌나 자연스럽던 지 전혀 어색하거나 튀지 않으면서도, 줌이나 패닝 등 영화 기법 등을 통해 연극과 차별화했다.

더불어 살인을 암시하는 단어와 소품들을 끊임없이 들려주고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유발한다.
그만큼 이 영화는 제한된 공간에서 연극적 진행을 통해 긴장을 최고로 유지하는 수작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흥행에서 실패했다.
이유는 영화 속에 은연 중 흐르는 동성애 코드 때문이다.

히치콕은 검열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동성애 코드를 최대한 감추고 은유적으로 표현했지만, 다 큰 청년들끼리 한 집에 사는 설정에서부터 당시 서양 관객들은 눈치를 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히치콕의 뛰어난 재능이 빛을 발한 수작이다.

요즘처럼 불필요할 정도로 컷을 잘게 쪼개 감각만을 추구하는 초스피드 시대에 컷이 없는 이 작품은 낯설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유연한 영상과 호흡이 끊어지지 않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뮤직비디오류 작품들과 차원이 다른 놀라움을 준다.

유니버셜에서 나온 히치콕 콜렉션에 포함된 DVD는 4 대 3 풀스크린을 지원한다.
화질은 링잉과 지글거림이 보이고 색번짐 현상도 나타나는 등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부록으로 한글 자막이 들어 있는 제작과정이 있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확연하게 컷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는 장면은 오프닝 씬 뿐이다. 여기서 히치콕이 행인으로 깜짝 출연.
원작자인 패트릭 해밀턴은 이 작품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영화를 불신해 거절했다. 그는 나중에 희곡과 달라진 내용을 보고 히치콕을 비난했다.
해밀턴이 거절하면서 시나리오 작업에 흄 크로닌이 합류했다. '의혹의 그림자'에 이웃집 남자로 출연하며 히치콕과 인연을 맺은 그는 1947년 유명한 반미활동조사위원회(HUAC)가 블랙리스트를 만들면서 영화 경력이 끊겼다. 흄은 자유주의자에 가까운 좌파였다.
시나리오 작가 아더 로렌츠가 이 작품 대본 작업에 참여했다. 아더는 동성애자였고, 그의 연인은 이 작품에 출연한 팔리 그레인저(왼쪽)였다. 히치콕이 일찍 낙점한 팔리와 아더가 연인이란 사실은 할리우드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좌파였던 아더도 HUAC 조사를 받고 할리우드에서 쫓겨났다.
조안 챈들러가 여주인공을 연기. 범죄를 주도한 청년을 연기한 존 댈도 동성애자다.
과거 사감교사 루퍼트를 연기한 제임스 스튜어트. 그는 할리우드에서 은퇴해 펜실베니아의 아버지 철물점을 운영할 생각이었으나 히치콕의 제의를 받고 이 작품에 출연했다.
원래 히치콕은 루퍼트 역에 케리 그랜트, 범죄를 주도한 브랜든 역에 몽고메리 클리프트를 낙점했다. 그러나 양성애자였던 케리와 동성애자인 몽고메리는 동성애 분위기가 풍기는 시나리오를 보고 거절했다.
해밀턴이 쓴 희곡에선 루퍼트가 지팡이에 숨긴 칼로 두 청년을 막지만, 영화에서는 필립의 권총을 빼앗는 것으로 바뀌었다.
배우들이 "작은 폭스바겐 만하다"고 표현한 커다란 테크니컬러 카메라가 움직일 수 있도록 천장에 트랙을 설치하고 여기에 벽을 매달아 움직이도록 했다.
결국 히치콕이 관 같은 상자안에 숨긴 건 동성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동성애 코드 때문에 흥행에 실패했고, 히치콕은 연출료 일부를 한동안 받지 못했다.
히치콕 콜렉션 블랙디지팩 (로프 나는비밀을알고있다 싸이코 의혹의 그림자 파괴공작원 이창 해리의 소동) 7Disc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히치콕
윤철희 역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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