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우석 감독의 '변호인'(2013년, http://wolfpack.tistory.com/entry/변호인)은 개봉 당시 노무현을 감추고 애써 '허구'의 영화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가 작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했다는 사실은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을 가명으로 감추고 허구의 영화라는 점을 강조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 영화는 노 전 대통령의 생애 중 1981년 발생한 부림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왜 하필 부림사건일까.
당시 전두환 군사정권이 독서 모임을 용공 이적단체로 몰아 조작한 대표적 공안 사건이었던 부림사건은 노무현의 인생을 극적으로 바꿔 놓았다.
노 전 대통령은 1994년 출간한 수필집 '여보 나 좀 도와줘'에서 부림사건을 "내 삶의 가장 큰 전환점"으로 짚었다.
돈 버는 일에 몰두했던 세무전문 '변호사'가 세상에 눈뜨고 사람들을 품어 안은 따뜻한 인권 '변호인'으로 거듭난 계기가 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사건 주임검사였던 최병국 검사가 공범으로 몰아넣겠다고 협박해 변론을 맡지 못하게 된 부산 인권변호사 김광일을 대신해 부림사건 희생자들의 무료 변론을 맡으면서 세상을 달리 보게 됐다.
'여보 나 좀 도와줘'와 유시민이 정리한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를 보면 당시 그는 희생자들이 읽은 책을 읽고 그들과 토론하며 많은 감명을 받아 시국에 눈을 떴다.
영화는 이 과정에만 집중해 인간 노무현의 변화과정을 응집력있게 그렸다.
물론 이야기를 압축해 보여주려다 보니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한 청년과 국밥집 아주머니라는 상징적 인물에 몰아서 표현했지만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실화에 근거하고 있다.
드라마틱한 주인공 변호사의 변모과정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정의롭고 따뜻했던 인간의 진심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이는 송강호, 곽도원 등 연기파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 덕분이다.
송강호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노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잘 살렸고, 곽도원은 찰진 악역 연기로 주인공을 빛나게 했다.
아마도 그림자 같은 그의 연기가 없었다면 양지가 밝게 보이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시대가 낳은 불행한 대통령이었던 노무현과 함께 했던 한 시대가 주마등처럼 흘러가며 가슴이 뜨거워진다.
시대를 되짚어 보고, 지금의 자신을 반추하며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다.
1080p 풀HD의 1.85 대 1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부드러운 윤곽선과 은은한 색감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채널 분리도가 좋아 적당한 서라운드를 들려준다.
부록으로 감독과 배우들의 음성해설, 제작과정, 배우 및 감독 인터뷰, 분장, 법정 및 고문장면 촬영과정, 삭제장면, 포스터 촬영과 VIP 시사회 등 다양한 내용이 들어 있다.
아쉬운 점은 음성해설에서 대사 음량이 너무 커 더러 해설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해외 타이틀처럼 해설 음량이 잘 들리도록 확실히 조절을 하거나 차라리 한글 자막을 넣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든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play 표시가 있는 사진은 PC에서 play 버튼을 누르면 관련 동영상이 나옵니다.*
노무현은 1975년 제 17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합격자 60명 중 고졸은 그가 유일했다. 그는 그보다 앞서 1971년 지금의 행정고시인 3급 공무원 1차 시험을 한 번에 붙어 자신감에 사시까지 도전했다.
주인공이 옮기는 아파트는 1980년대 초반 부산 상류층이 살았던 광안리 삼익아파트를 모델로 했다. 노무현은 대전지법 판사를 거쳐 1978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노무현은 찢어지게 가난한 고학생 시절 실제로 음식점에서 밥값을 내지 않고 달아났다가 나중에 찾아가 갚은 일화가 있다. 물론 국밥집 이야기는 이런 에피소드들을 소개하기 위해 만든 허구다.
1970년대 중후반 한일합작으로 국내 시판했던 화신소니의 흑백TV. 소니에서 수입한 주요 부품에 국산 부품 일부를 결합해 만들었다. 영화 속 배경인 1980년대 초반 국내에서는 제한적으로 컬러TV 방송을 할 때 였으나 당시 흑백TV를 많이들 봤다. 원래 이 모델은 다리와 여닫이 문이 달린 제품으로 나왔다. 극 중 송강호가 보며 웃는 프로그램은 작고한 희극인 배삼룡이 출연했던 '웃으면 복이와요'로 기억한다.
1981년 9월 터진 영화 속 사건은 부산의 학림사건이란 뜻으로 부림사건이란 이름이 붙었다. 학림사건은 군사 정권이 반국가단체로 몰아서 조작한 용공사건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의 첫 모임 장소였던 서울 대학로의 학림다방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노무현은 실제로 올림픽에 나갈려고 2인승 경주용 요트를 사서 일본까지 건너가 교육을 받고 열심히 연습했다. 당시 요트선수 등록 조건 중 하나가 영화처럼 요트 소유였다.
'범죄와의 전쟁'을 찍은 곳인 부산 흰여울마을에서 촬영한 장면. 부림사건은 독서 모임 회원을 포함해 22명을 영장없이 불법 체포해 온갖 고문으로 반국가단체를 만들어 정부 전복을 꾀하려 했다는 혐의를 씌워 5~7년형을 선고했다. 22명 중에는 일면식도 없다가 재판정에서 얼굴을 처음 본 사람들도 여럿이었다.
부림사건 피해자들은 2009년 계엄법 위반 등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고 33년만인 지난달 25일, 대법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등에 대해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
노무현은 피의자인 고호석(당시 부산 대동고 영어교사) 접견과정에서 전기고문으로 발톱이 새까맣게 죽어 빠지기 직전인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아들이 혹시 죽었을까 싶어 시체안시소까지 돌아다닌 어머니 얘기는 부산대 출신 송병곤씨 얘기이며, 수사관이 "너의 사상이 무엇이냐"고 묻는 대목은 대연여중 교사였던 김희욱씨가 겪은 일이다. 송병곤씨는 훗날 노무현이 문재인과 함께 차린 법무법인 부산의 사무장을 지냈다.
노무현은 부림사건 변론때 분노를 그대로 드러내 검사와 삿대질까지 해가며 맞섰다. 이후 노무현에게 한을 품은 검찰은 1987년 2월 고문치사로 죽은 박종철군 추모 시위때 김광일 변호사를 제쳐놓고 노무현에게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백골단 옆으로 지랄탄을 쏘아대는 경찰차량이 보인다. 시대를 공유한다는 것이 추억일 수 있지만 때로는 아픔일 수 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코 끝을 스치는 것 같았다.
2009년 5월23일 아침, 봉화마을 뒷산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진 노무현은 바위에 두 번 부딪친 뒤 솔숲에 떨어졌다. 송강호는 노무현과 가족들에게 누를 끼칠까봐 처음에 배역을 거절했다가 머리 속에서 대본이 떠나지 않아 출연하게 됐단다. 그는 노무현 자서전 제목처럼 "운명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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