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슬럼독 밀리어네어(블루레이)

울프팩 2020. 9. 13. 16:42

대니 보일(Danny Boyle) 감독의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 2008년)는 일확천금의 우연과 행운이 겹치는 판타지 같은 영화다.

인도(India)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실제로 인도의 유명 TV 퀴즈쇼를 소재로 하고 있다.

 

우연히 퀴즈쇼에 출연한 주인공 자말 말릭(데브 파텔 Dev Patel)은 희한하게 자신이 겪었던 경험과 관련된 퀴즈를 만나면서 졸지에 백만장자에 한 걸음씩 다가가게 된다.

자신이 겪지 않거나 모르는 문제는 찍었는데 들어맞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자말의 목표는 우승이 아니다.

TV에 출연해 예전에 헤어진 첫사랑 라티카(프리다 핀토 Freida Pinto)를 찾는 것이 목표다.

 

우연과 행운으로 점철된 로또 같은 영화

이 영화는 한마디로 시나리오의 승리다.

퀴즈 문제와 자말의 사연을 기가 막히게 연결해 마치 한 편의 추리소설처럼 풀어낸다.

 

덕분에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영상이 자연스럽게 아귀가 맞는다.

그만큼 구성과 연출이 뛰어나다.

 

물론 여기에는 인도 외교관 출신인 비카스 스와루프(Vikas Swarup)가 쓴 원작 소설 'Q&A'가 기여한 바가 크다.

퀴즈에 사건을 대입시키는 워낙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야기를 풀어냈기 때문이다.

 

물론 허점도 있다.

어떻게 한 번도 아니고 여러 가지 문제마다 자말의 사연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심지어 과거 사연과 얽히지 않는 문제마저도 우연히 찍었는데 정답이 나오는 기막힌 행운까지 따른다.

이쯤 되면 개연성을 논하기에는 공상과학(SF)처럼 너무 황당하다.

 

그럼에도 말이 안 되는 우연과 행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기저에 깔린 자말의 순수한 사랑 때문이다.

집요하고 답답할 정도로 라티카를 찾기 위해 죽을 고생을 하는 자말의 노력은 숭고하면서도 위대해 보인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알라딘을 닮은 자말

그런 점에서 퀴즈쇼 결승에 올라 라티카를 애타게 찾는 자말의 모습은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Arabian Night)의 알라딘(Aladdin)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의 퀴즈쇼는 알라딘의 마법 램프 속에 사는 요술쟁이 지니다.

 

불가능할 것 같던 공주와 사랑의 결실을 맺기 위해 마법 램프 속 지니의 힘을 빌리는 것처럼 자말은 퀴즈쇼에 출연한다.

어떻게든 알라딘과 공주와의 사랑을 막아섰던 마법사는 이 작품에서 라티카를 폭력적으로 움켜쥐고 있는 뒷골목 범죄 조직의 보스로 대체됐다.

 

원작자인 스와루프가 일부러 아라비안 나이트 속 알라딘의 서사 구조를 따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보는 사람의 관심을 유발하는 상당히 흥미로운 구성이다.

우리는 알라딘을 읽으면서 하늘을 나는 마법 양탄자와 조그만 램프 속에 사는 거인 지니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다.

 

겉에 보이는 판타지적인 요소보다 뒤에 숨어있는 사랑의 힘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말도 안 되는 우연과 행운의 점철은 결국 위대한 사랑의 힘으로 귀결되는 결말을 향해 달려가기를 보는 사람 모두가 갈망하기에 애써 문제 삼지 않을 뿐이다.

그것이 알라딘 같은 판타지의 힘이요, 현대판 판타지인 이 작품이 갖고 있는 마법이다.

 

끔찍하고 무서웠던 인도

더불어 이 작품은 우리가 관광으로는 쉽게 보지 못하는 인도의 실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제목이 말하듯 찢어지게 가난한 인도의 빈민가 청년들을 주인공으로 하기에 영화는 빈부격차가 심한 인도의 슬럼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산을 이룬 쓰레기 더미에서 사는 사람들, 상하수도는 물론이고 변변한 하수도 하나 없어 고생하는 빈민가의 모습은 정말 그럴까 싶지만 실제 인도에 가서 보면 더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인도는 끔찍하게 불결할 뿐만 아니라 상당히 무섭다.

 

예전 인도에 출장을 간 적이 있는데 당시 주 인도 한국대사가 일부러 기자들을 데리고 관광으로는 볼 수 없는 풍경들을 보여준 적이 있다.

당시 류시화 등 인도 관련 서적들이 국내에 쏟아져 나오면서 인도에 대한 환상을 품고 혼자 여행 가는 사람들이 많으니 이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글을 써서 인도의 실상을 제대로 알려달라는 취지였다.

 

거리에 쌓여있는 짐승의 똥을 연료로 쓰기 위해 손으로 퍼가는 사람들, 신호등은 고사하고 방향등도 켜지 않고 중앙선을 넘나드는 자동차들, 광견병에 걸려 침을 흘리며 배회하는 개들과 수시로 머리 위에서 물건을 나꿔채 사라지는 원숭이들, 시체를 태우고 똥오줌을 갈기는 물로 세수하고 빨래를 하며 밥을 짓는 풍경 등은 애교일 뿐이다.

그것보다 더 끔찍한 것은 인신매매와 장기밀매, 매매춘, 사기와 난무하는 폭력이었다.

 

그 당시 봤던 풍경들은 차마 필설로 다 옮기기 힘들 만큼 처참했다.

특히 지금도 강렬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호텔 앞에서 구걸하던 아이들이었다.

 

대통령 영빈관으로 쓰던 특급 호텔 문 앞에 아침이면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몸이 성한 아이들은 얼마 없고 팔다리가 하나 없거나 앞을 보지 못하는 등 대부분 신체가 불편한 아이들이었다.

 

원래부터 불구가 아니라 돈을 받아내기 위해 어른들이 멀쩡한 팔다리를 잘라서 강제로 동냥을 내보낸 것이다.

가여운 생각에 동냥을 주면 순식간에 새까맣게 몰려드는 아이들 때문에 움직이기 힘들 정도였다.

 

어쩌다 외국인이 항의라도 하면 무심하게 서 있던 경찰관들이 다가와 커다란 곤봉으로 아이들을 닥치는 대로 후려갈겼다.

퍽퍽 소리와 함께 눈 앞에서 아이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 두 번 다시 항의할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도 유사한 장면이 나온다.

자말 일행을 데려간 불량배들이 일부러 다른 아이를 장님으로 만드는 장면이다.

 

마치 눈이 멀면 한이 맺힌 소리가 나온다는 '서편제'처럼 불량배들은 "장님이 노래하면 두 배로 번다"는 얘기를 아무렇게 않게 뇌까린다.

영화 속에서는 이런 인도의 실상들이 가감 없이 나온다.

 

이를 불편하게 여긴 인도 사람들은 이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두운 면만 부각했다는 것이다.

 

인도 사람들 입장에서는 불공평하게 느낄 수 있다.

정작 좋은 모습은 판타지처럼 비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어두운 부분만 강렬하게 부각했기 때문이다.

 

타지마할 뒤에 가려진 실상

심지어 인도가 자랑하는 타지마할(Taj Mahal)도 속임수로 돈을 버는 엉터리 가이드들의 놀이터처럼 묘사했다.

여기 다 옮기기 힘들지만 직접 가서 본 타지마할의 사기꾼들은 영화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비록 우연과 행운으로 점철된 판타지 같은 영화지만 사랑에 대한 순수한 꿈과 열망을 드라마틱하게 구성한 잘 만든 작품이다.

엔딩 타이틀은 인도 영화처럼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뮤지컬 식으로 구성했는데 이마저도 매력적이다.

 

2009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음악상, 편집상, 촬영상, 음향상, 주제가상 등 무려 8개 부문을 휩쓴 작품이다.

충분히 그만한 가치를 지닌 영화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괜찮다.

필터링된 색감이 잘 살아 있으며 색감 또한 강렬하다.

 

돌비트루HD를 지원하는 음향은 요란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각종 효과음이 사방 채널을 떠들썩하게 울려댄다.

 

부록으로 대니 보일 감독과 데브 파텔의 해설, 제작과정과 삭제 장면, 제작진과 배우들 인터뷰, 수상 소감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일부 부록의 한글 자막에 오탈자가 있어 아쉽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극 중 퀴즈쇼는 2000~2007년 인도 TV에서 방영돼 높은 인기를 끈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라는 퀴즈쇼를 흉내냈다.
'라이프 오브 파이'에도 출연한 유명 스타인 이르판 칸이 경찰로 등장. 1967년 인도 자이푸르에서 태어난 그는 에어컨 수리기사를 하다가 연기자가 됐다. 2020년 4월28일 신경내분비종양이라는 희귀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제작진은 사람들에게 치이지 않고 뭄바이의 빈민가를 찍기 위해 SI-2Ks, SL-2K 등 작은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
200만명이 넘게 사는 드라비의 빈민촌은 화장실이 없다. 그래서 간이 푸세식 변소를 지어놓고 돈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이 작품의 극본은 '풀 몬티' 시나리오를 쓴 사이몬 뷰포이가 썼다. 원작 소설에 더 많이 나오는 퀴즈 문제를 9개로 줄였다.
아이들을 납치하거나 부모에게서 돈 주고 산 불량배들이 팔 다리를 잘라 동냥을 내보내는 일이 흔하다. 그래서 악순환 근절을 위해 절대 아이들에게 돈을 주지 말라고 한다.
달리는 기차에서 창문에 매달려 먹을 것을 훔치는 아이들이 추락하는 장면은 스턴트맨들이 대신 연기했다.
촬영 허가를 받기 힘든 타지마할에서 승락을 받고 촬영. 외부는 캐논의 DSLR로 찍고 내부 장면은 세트를 만들어 찍었다.
갠지스 강 상류에 위치한 우타르 프라데시에는 관광객을 노린 도둑들이 들끓는 빨래터가 있다.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와 에우리디케'의 한 장면이 영화에 등장. 자말과 라티카의 사랑을 암시한다.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을 만큼 거대한 관들은 빈민가를 관통해 봄베이로 물을 보내는 수도관이다.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은 히레넌도니에서 촬영. 공사장 한복판에 들어선 저택은 실제 아파트 건물주의 집이다.
뭄바이의 중심인 차트라파티 시바지 역. 옛 빅토리아역이다. 소설의 내용이 워낙 많다보니 영화는 상당 부분 줄였다. 특히 여러 여성이 등장하는데 이를 한 여성의 이야기로 압축했다.
뭄바이 태생인 프리다 핀토는 모델로 활동하다가 이 작품을 통해 배우가 됐다. 그는 남자 주인공인 데브 파텔과 실제 연인이 됐다가 헤어졌다.
빅토리아 역에서 촬영한 엔딩 장면. 소설에 등장하는 중요한 변호사가 영화에서는 아예 사라졌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 블루레이
 
슬럼독 밀리어네어 : 블루레이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예스24 | 애드온2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오동 전투(블루레이)  (2) 2020.09.21
젠틀맨(블루레이)  (0) 2020.09.19
존 윅 리로드(4K 블루레이)  (0) 2020.09.05
공각기동대(블루레이)  (2) 2020.08.26
판의 미로(4K 블루레이)  (4) 2020.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