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저패니메이션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 1995년)를 처음 봤을 때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뇌(電腦), 인형사 등 단어부터 생소했고 주인공인 쿠사나기 모토코의 정체도 쉽게 파악이 되지 않았다.
로봇인지 사람인지 헷갈리는 상황에서 마지막 결말을 보면 유령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만큼 모호한 존재가 등장하는 이 작품은 다분히 실존주의 철학의 냄새마저 강하게 풍기는 작품이었다.
너는 누구인가, 실존주의적인 질문을 던지다
이 작품이 등장한 1995년은 국내에 인터넷 조차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1994년 국내 최초의 민간 인터넷 업체인 아이네트가 등장해서 이메일 계정을 판매했지만 사람들은 무엇에 쓰는 것인지 몰랐다.
여전히 모뎀을 이용해 PC통신을 하던 시절이었고 인터넷은 학계나 연구소 같은 전문가들의 전유물이었다.
하물며 가상세계에만 존재하는 사이버 캐릭터나 해커, 요즘으로 치면 브레인 테크에 해당하는 전뇌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개념이었다.
그러던 시절에 몸의 일부를 기계로 바꾸고 뇌에 전극을 연결해 네트워크를 뒤지고 다니며 통신하는 전뇌를 다뤘으니 상당히 앞서간 작품이었다.
특히 인공지능(AI)과 뇌 해킹을 통한 사이보그의 폭주 등은 요즘 들어 거론되는 부작용인 만큼 미래까지 내다본 셈이다.
내용은 핵전쟁 이후 서기 2029년 미래의 도쿄에서 벌어지는 해킹 사건과 이를 수사하는 수사관들을 다루고 있다.
정체불명의 해커인 인형사의 조종으로 사이보그가 폭주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공안 6과라는 특수 수사조직이 출동한다.
공안 6과의 수사관들은 몸의 일부를 기계로 바꾸거나 뇌에 전극을 연결해 통신을 하는 등 요즘 수사관들은 다른 능력을 갖고 있다.
이들을 지휘하는 현장 팀장인 쿠사나기는 정작 해커의 정체를 알게 되자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과연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바꾼 자신을 진짜라고 할 수 있는지, 아니면 네트워크를 자유롭게 누비는 고스트라고 부르는 자신의 정신이 진짜인지 고민하게 된다.
사이버 공간에서 아바타를 내세워 자신을 대리하는 요즘 시각에서도 한 번쯤 고민해 볼 문제다.
아예 게임이나 사이버 공간, 예능에서는 '부캐'(부 캐릭터)라고 부르는 사이버 캐릭터를 여러 개 만들어 스스로 정체성을 다중인격처럼 쪼개기도 한다.
이쯤 되면 과연 어느 것을 실존적 자아로 봐야 할지 고민이 될 만하다.
그만큼 이 영화는 미래의 실존주의 고민을 미리 앞서 다룬 묵직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보여준 앞서간 개념들은 워쇼스키 형제가 만든 '매트릭스'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시로 마사무네가 그린 원작 만화도 훌륭했지만 이를 2시간 내에 집약해 실존주의적 메시지를 던진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연출력이 뛰어났다.
특히 그림도 훌륭했다.
홍콩을 배경으로 그린 미래의 도쿄 풍경은 마치 세밀화를 보는 것처럼 아주 사실적이다.
여기에 선 굵은 만화 캐릭터들이 겉돌지 않고 배경에 잘 녹아들어 묵직한 이야기를 잘 살렸다.
더불어 카와이 켄지가 맡은 음악도 인상적이다.
아름답고 듣기 좋은 음악은 아니지만 마치 주문을 외우는 듯한 날카로운 음색과 반복되는 리듬은 영화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한마디로 이야기와 주제의식, 그림, 음악 등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룬 훌륭한 작품이다.
다만 원작 만화의 유머 감각이나 액션은 이 작품에서 많이 등장하지 않는 만큼 이를 기대한다면 오히려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다시 나온 '공각기동대 S.A.C'를 보는 것이 낫다.
여러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공각기동대 S.A.C'는 그림은 극장판보다 떨어지지만 원작의 유머 감각과 액션을 잘 살렸다.
국내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3장의 디스크로 구성돼 아주 실속 있다.
구성이 훌륭한 국내 블루레이
우선 1995년 극장판과 여기에 컴퓨터 그래픽 부분을 보강해 다시 내놓은 2008년 '공각기동대 2.0', 부록 등이 각각의 디스크에 수록돼 있다.
'공각기동대 2.0'은 컴퓨터 그래픽 부분을 좀 더 다듬고 인형사의 목소리를 남자에서 여자로 바꾸고 서라운드 음향을 강화한 것 외에 원작과 달라진 게 없어서 따로 사기는 좀 아깝다.
그런데 이를 한꺼번에 넣어줬으니 고맙기 그지없다.
1080p 풀 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그저 그렇다.
일본 타이틀 특유의 뿌연 느낌이 강하고 윤곽선도 두껍다.
당연히 색감도 탁한 편.
다행이라면 뒤로 갈수록 화질이 안정된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화질이 떨어지는 편인데 DVD 타이틀보다 낫다는 점에 위안을 삼아야겠다.
리니어 PCM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괜찮다.
소리의 방향감이 확실하게 살아 있다.
부록으로 오시이 마모루 감독 인터뷰, 국내 블루레이 타이틀 구입자들을 위한 별도의 감독 인터뷰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구입자들을 위한 감독 인터뷰는 HD 영상으로 제작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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