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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장고 : 분노의 추적자

울프팩 2013. 3. 23. 23:36
1970년대 흑백TV 시절, '주말의 명화' 시간에 본 '쟝고'(http://wolfpack.tistory.com/entry/쟝고)는 기존 서부극과 많이 달랐다.
외래어 표기법 대로라면 '장고'가 맞지만 국내 개봉 제목은 '쟝고'(Django, 1966년)였다.

이탈리아의 좌파 감독 세르지오 코르부치가 만든 이 영화는 시작부터 음침하고 기괴한 주인공이 관을 끌며 나타났다.
영웅의 풍모가 풍겼던 기존 서부극 주인공과 달리 기괴한 느낌을 주던 주인공은 관 속에서 기관총을 꺼내 낙엽쓸 듯 적을 휩쓸었다.

거기에는 정통 서부극의 1 대 1 대결 대신 집단 학살극이 있었고, 처절하게 짓이겨진 주인공 위로 유명한 루이스 바칼로프가 만든 주제곡이 흘렀다.
프랑코 네로가 연기한 주인공과 무시무시한 기관총, 여기에 멋드러진 주제곡이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도 같은 인상을 받았던 모양이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주저없이 이 영화를 꼽았다.

그리고 나서 '장고 : 분노의 추적자'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를 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코르부치 감독의 원작과 아주 많이 다르다.

서부극이라는 장르와 주인공 이름, 그리고 소소한 설정 몇 가지만 빌려 왔을 뿐 기본 뼈대를 타란티노 식으로 다 뜯어 고쳤다.
우선 주인공부터 황당하게도 흑인 총잡이(제이미 폭스)로 바뀌었다.

웃어야 할 지, 어이없어 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원작에서 장고는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온통 검은색이다.
주연배우인 프랑코 네로가 검은색이라는 뜻의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설정했다.

타란티노 감독은 이를 아예 검은 피부로 바꿔 버렸다.
대신 원작에서 장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관과 기관총을 없애 버리고 백인 파트너를 붙여줬다.

원작에서 살린 설정은 채찍찔과 큐클럭스클랜(KKK)이다.
멕시코 악당들이 백인 매춘부의 등짝을 후려 갈기던 끔찍한 채찍질이 흑인 노예들의 몸뚱이를 휘감으며 더 공포스럽게 바뀌었다.

원작에서 KKK를 비꼰 붉은 두건의 악당들은 작심하고 흰색 두건의 멍청하고 겁많은 KKK로 바뀌어 한껏 조롱의 대상이 됐다.
그만큼 타란티노의 이 작품은 원작과 약간 비슷하면서 큰 차이를 지닌 작품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는 노예제도에 대한 가혹한 비판이다.
그것도 미국 영화의 상징인 서부극이라는 장르를 빌려 피로 얼룩진 미국 역사에 정면으로 총구를 들이댔으니 미국인들이라면 불편한 영화일 수도 있겠다.

타란티노가 이 작품에서 그린 백인 조상들은 코르부치 원작의 추악한 멕시코 악당이나 진배없다.
어찌보면 용기있는 비판일 수도 있고, 난데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타란티노 감독은 보는 이들이 주인공에 동화돼 공분을 자아낼 수 있도록 충분히 설득력있게 이야기를 끌어갔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서며 이야기가 약간 늘어지는 것이 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란티노의 개성을 충분히 잘 살려 그만의 서부극을 잘 만들었다.

특히 영상을 돋보이게 만드는 음악을 고르는 타란티노의 훌륭한 안목은 여전하다.
뉴트롤스의 루이스 바칼로프가 작곡한 원작 주제가를 비롯해 짐 크로치에 갱스터랩까지 다채로운 노래를 동원해 맛깔스럽게 분위기를 살렸다.

타란티노식 유머에 절로 웃음이 나왔던 인상적인 대목 하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흑인 노예들의 결투를 벌인 끝에 진 백인 주인이 제이미 폭스에게 걸어와 말을 건다.

"이름이 뭔가?"
"장고"
"스펠은?"
"Django. D는 묵음이야."
"알고 있어."

남자는 말 없이 돌아서 간다.
그가 바로 원작의 장고, 프랑코 네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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