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오즈 야스지로 9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아서야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아서야'(1934년)는 일본의 대표적 감독 오즈 야스지로가 만든 흑백 무성영화다. 배다른 형제를 사랑으로 키우는 어머니의 희생을 다룬 오즈의 초기 작품. 내용은 다소 도식적이다. 결코 쉽지 않은 가족 관계 속에서 오해와 갈등이 싹트지만 결국 어머니의 커다란 사랑을 깨닫고 다시 돌아온다는 설정을 식상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오즈 야스지로 감독 특유의 관조적 영상 덕분이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말없이 묵묵히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의 사랑과 자라면서 이를 깨닫는 형제의 모습을 특유의 잔잔한 영상으로 잘 담아 냈다. 언제나 그렇듯 오즈는 이 작품에서도 무심한 듯 빈 공간을 비추는 카메라 앵글을 통해 관조와 사색의 여백을 둔다. 새삼 80년전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세월을 뛰어넘어 가슴에..

동경여관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여관’(1935년)은 쉽게 보기 힘든 일본의 무성영화다.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 등 서양 무성 영화는 많지만 동양 무성영화는 상대적으로 흔치 않다. 그만큼 이 작품은 오래됐다. 구로사와 아키라, 미조구치 겐지와 더불어 일본을 대표하는 3대 감독 중 하나인 오즈 야스지로는 어려서부터 학교를 가지 않고 영화를 보러 다녔다. 그 바람에 촬영 감독 조수로 영화계에 발을 디딘 그는 1927년부터 감독이 돼서 죽기 전 해인 1962년까지 55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그 가운데 비교적 그의 무성영화 후기작에 해당된다. 아내가 달아난 뒤 홀로된 가장이 두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도쿄를 떠돌며 일자리를 구하는 내용. 이 과정에 역시 딸아이를 데리고 홀로 떠도는 여인을 만난 가장은..

과거가 없는 남자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과거가 없는 남자'(Mies Vailla Menneisyytta, 2002년)는 실소를 자아내는 허무 개그같은 영화다. 은행에 뛰어든 강도는 감시 카메라를 발견하고, "감시 카메라냐"고 묻는다. 은행원이 "그렇다"고 대답하고 말을 이으려는 찰나, 강도는 총을 쏴서 카메라를 부숴 버린다. 총소리가 잦아드는 순간 "작동하지 않는다"는 은행원의 말이 꼬리를 문다. 뭔가 한박자씩 어긋난 상황이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렇다고 폭소가 터지는 것은 아니다. 정색을 한 배우들이 진지한 연기로 삶의 아이러니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웃음 코드다. 이 작품은 불량배들에게 머리를 얻어맞고 죽다가 살아난 남자가 과거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뒤 겪는 이야기를 다뤘다. 이..

동경이야기

참으로 가슴이 먹먹한 영화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이야기'(1953년)는 노부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잔잔한 이야기로 큰 울림을 준다. 미국의 유명한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을 "위대한 감독일 뿐 아니라 위대한 선생님"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을 보면 그 말에 절로 공감이 간다. 10년 마다 세계 명작 순위를 메겨 유명한 영국 영화전문지 '사이트 앤 사운드'는 올해 발표한 리스트에서 1위 히치콕의 '현기증' , 2위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에 이어 3위로 '동경이야기'를 꼽았다. 이처럼 앞다퉈 이 작품을 명작의 반열에 올려 놓는 까닭은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자식들을 모두 분가시킨 노부부가 자식들을 찾아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