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정유미 8

옥희의 영화

영화 시사회장에서 사회자가 감독에게 영화의 주제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감독 왈, ""주제의식을 갖고 영화를 보지마라. 우연히 사람을 만나 벌어지는 일 같은 영화다. 그만큼 다양한 면을 담았다. 마치 깔때기로 모아놓은 것 같은 (주제의식을 집약한) 영화를 싫어한다." 이번에는 객석에서 질문을 던졌다. 유부남인 감독이 과거에 어떤 여자를 사귀고 버리지 않았냐는 질문이다. 감독은 난감한 표정이다.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2010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이다. 아마 홍 감독은 집요하게 영화를 해부하려는 평론가나 기자들에게 불편함을 느낀 듯 싶다. 홍 감독은 그냥 보면 되지, 굳이 무슨 의미 부여가 필요하냐는 뜻을 작품 속에서 감독을 연기한 이선균의 대사를 빌려서 전한다. 감독의 생각도 이해가 가지..

내 깡패같은 애인

박중훈은 껄렁껄렁한 역할이 잘 어울리는 배우다. 개성있는 생김도 그렇고 특유의 발성과 몸짓이 연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투가이즈' '투캅스' '게임의 법칙' 등 잡초처럼 살아가는 인생을 연기하는데 제격이다. 본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정극보다 오히려 그런 역할들이 박중훈이라는 배우를 더 빛나게 한다. 그런 점에서 김광식 감독의 '내 깡패같은 애인'은 박중훈을 위한 영화다. 한 물간 삼류 건달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백수 여인이 연립주택 지하에 이웃으로 세들어 살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이 작품에서 박중훈은 똑떨어지는 날건달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 덕분에 대학원까지 나온 취업준비중인 젊은 처녀와 깡패 사이에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꿈같은 사..

영화 2010.05.24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홍상수 감독의 9번째 작품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8년)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영화감독이 자신의 선후배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황당한 사건들을 다뤘다. 여전히 홍 감독 특유의 돌발적인 사건과 뜻밖의 대사들이 황당한 웃음을 자아낸다. 사람들이 일상성이라고 부르는 홍 감독 특유의 전매특허같은 무의미한 인서트 컷들과 무신경한 프레임, 대충 툭툭 끊어놓은 듯한 거친 편집 등도 변함없다. 마치 사람들이 일상에서 고개를 돌렸을 때 망막에 마구잡이로 걸리는 의도하지 않은 영상들이다. 공들여 미장센느를 구축한 작품들과 비교하면 무성의해 보일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가장 자연스러운 영상일 수 있다. 이제는 그런 홍 감독 특유의 일상성이 편하게 다가온다. 남다른 의미부여 없이 편하게 보이는 대로 보면 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