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용의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호방한 화풍과 귀신같은 칼솜씨를 지닌 맹인 검객의 독특한 이야기가 빛을 발하는 명작이다. 그림이 시원 시원하고, 정사 장면을 기왓장이 쏟아져 내리는 풍경으로 표현하는 등 탁월한 은유가 빛나는 작가주의 정신으로 충만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를 원작으로 한 이준익 감독의 동명 영화(2010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 감독은 원작 만화에서 시골 진사의 서자로 나오는 주인공 견주를 명문 세도가의 서자로 설정해 당쟁의 소용돌이 한복판으로 밀어넣으며 시대극으로 만들었다. 신경질적인 왕을 통해 당파 싸움만 일삼는 조정을 비꼬는 장면들을 보면 '왕의 남자'나 '황산벌'처럼 권세가들을 조롱하는 이 감독 특유의 비판 정신은 살아 있다. 하지만 풍자와 해학 속에 뼈있는 메시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