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미무니 감독의 '라 빠르망'(L'Appartement, 1996년)은 여러 사람의 운명을 농락한 팜므 파탈의 이야기다. 한 남자에 대한 집착과 사랑이 여러 사람의 운명을 뒤바꿔 놓으며 인생을 파멸로 몰고 가는 과정은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용납하기 힘들만큼 파괴적이다. 영화는 운명에 농락당하는 남자와 이를 조종하는 여자의 각기 다른 시점에서 진행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의 피상적인 이야기가 흐르고 나면, 복기하듯 여자의 무서운 음모가 드러난다. 이 과정이 꽤나 치밀하게 그려져 흥미진진하다. 그만큼 미무니 감독의 탄탄한 대본과 절제된 연출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화장품, 거울과 구두 등 소품을 이용해 등장인물들의 운명을 암시적으로 나타낸 은유적 구성이 훌륭하다. 여기에는 예술적이고 감각적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