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과거가 없는 남자'(Mies Vailla Menneisyytta, 2002년)는 실소를 자아내는 허무 개그같은 영화다. 은행에 뛰어든 강도는 감시 카메라를 발견하고, "감시 카메라냐"고 묻는다. 은행원이 "그렇다"고 대답하고 말을 이으려는 찰나, 강도는 총을 쏴서 카메라를 부숴 버린다. 총소리가 잦아드는 순간 "작동하지 않는다"는 은행원의 말이 꼬리를 문다. 뭔가 한박자씩 어긋난 상황이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렇다고 폭소가 터지는 것은 아니다. 정색을 한 배우들이 진지한 연기로 삶의 아이러니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웃음 코드다. 이 작품은 불량배들에게 머리를 얻어맞고 죽다가 살아난 남자가 과거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뒤 겪는 이야기를 다뤘다. 이..